▲최충식 논설위원 |
자장면만 하도 먹다 물려 비빔밥을 먹었다. 자장면이 현실이고 비빔밥이 실존적 대안이라 할 때, 이러한 메뉴 변경을 진보라 불러도 틀리지 않다.
좌파정권 교체가 명분인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대권 3수는 잘잘못을 떠나 자장면 애호층을 둘로 가르는 행위일 수 있다. 좌파와 우파의 낡은 문법을 적용하는 것이 적절한가는 지금 문제삼지 않겠다.
이명박.이회창 두 후보는 아무튼 10년 좌파정권 종식이나 이념과 대북관에서 흡사하다. 이회창 후보가 절차적 민주주의에 흠집을 내면서 출마한 것은 그러한 메시지를 전파할 프레임을 장악하지 못했다고 판단했거나, 어중된 자장밥을 만들어 면인지 밥인지 모르게 정체성과 비전을 훼손했다고 봤을 수도 있다.
둘을 이념성향에서 중도보수(이명박), 강경보수(이회창)로 분류할 수는 있다. 그 차이는 자장면을 짬뽕이나 우동으로 바꾸거나 그냥 자장면을 고수하는 정도라고 본다. 혹은 간자장이나 수타면을 찾는 격이랄까. 따라서 이회창 후보 출마의 원죄는 자장면파(波)의 분열은 물론, 자장면 애호가라도 느끼할 땐 눈치껏 비빔밥을 찾는 공유의 현실을 아우르는 데 실패했다는 점이다.
거시적으로 보면 연말 대선은 진보 대 보수의 대결장이다. 그러나 이회창 후보의 출현으로 정책이나 정당보다 인물 싸움이 될 공산이 오히려 더 커졌다. 햇볕정책과 같은 명확한 메뉴가 있긴 하지만, 대선일이 코앞에 닥치면 경제공약도 짬뽕이든 비빔밥이든 차이가 뭔지 모를 잡탕밥으로 화할 게 뻔하다.
대선주자에게 성향을 물으면 중도에 가깝다고 답변하는 것도 자장면파와 비빔밥파 양 진영의 표를 다 흡수하겠다는 전략적 심산이다. 실제로 자장면과 비빔밤을 가리지 않고 먹는 중도층이 아주 두텁다. 이들이 자장면집과 비빔밥집의 매상을 좌우할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어떤 토를 어느 쪽에 달아도 음식 맛 개선에 이론이 있어서는 안 된다. 진보에게나 보수에게나 새 단어가 실린 자기혁신의 사전이 필요하다. 극단은 좋지 않다. 프랑스에서 좌파가 집권해도 위험하지 않았던 요인은 좌에도 우에도 벼랑끝이 없었기 때문인데, 이는 우리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
자장면이 신통치 않으니 예전에 먹던 ××로니나 ××게티로 돌아가자는 반동, 비빔밥에 춘장을 얹자는 신자유주의의 발호가 더 무서울 수 있다. 자장면은 자장면이고 비빔밥은 비빔밥이다. 대선 밥상이 어떻게 차려지든 달라진 유권자 입맛의 흐름을 잘 읽는 후보가 이번 대선에서도 유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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