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일순 서원초 교사 |
올 봄까지만 해도 다닥다닥 까만 솔방울들만 가득 매달고 있었다. 몇 개 남지 않은 입마저 까맣게 말라 갔다. 아무리 올려다보아도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서려 있었다. 있는 기운 쥐어짜 겨우, 겨우 솔방울을 매달았을 것이다.
몇 년 전 심었다는 소나무는 꽤 고가라 했다. 고가인 만큼 수형 또한 멋졌다. 아랫부분에서 약간 휘어지며 위로 쭉 뻗어 올라간 몸매가 늘씬했다. 푸른 하늘이고 이리저리 뻗은 가지도 예쁜 몸매와 잘 어울렸다.
어쨌거나 소나무는 죽어갔다. 안타까웠다. 들리는 말로는 식재 할 때, 뿌리를 꽁꽁 묶은 널따란 고무 끈을 풀지 않았다 한다. 게다가 소나무는 흙을 높이 돋궈 단을 만든 후 심어 놓았다.
시름거리던 처지인지라 지심까지 굳건하게 뻗어 내려가 물을 끌어올리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귀한 대접하느라 높은 단 위에 심은 것이 소나무에게는 더 나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겨우 겨우 생명을 이어가던 소나무는 바닥을 드러낸 듯 했다. 유난히 많이 매단 까만 솔방울들만 눈에 가득 들어오는 것이.
그 소나무가 마침 출근하면 학교 안팎을 수시로 둘러보던 교감 선생님 눈에 띄었나 보다. 간부진에서는 머리를 맞대고 소나무 살릴 방도를 궁리 하셨을 것이다.
4월초 그 나무 아래에는 까만 솔방울들이 숱하게 뒹굴었다. 몇 양동이는 넘쳐날 양이었다. 이내 높다란 단의 소나무 둘레에 둥그런 고랑이 파졌다. 소나무 꼭대기에 호스를 끌어 올려 위에서부터 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일시에 많이 주는 게 아니라 조금씩, 아주 조금씩 흘려보냈다. 오랫동안 소나무 둘레는 한동안 젖어 있었다.
오랫동안 소나무에게선 아무런 기별이 없었다. 겨우, 겨우 붙어있던 잎마저 까맣게 말라죽은 채로.
한참 후, 아기 손가락 한 개 마디 만한 연초록 새 잎이 모든 가지에 새로이 돋아난 걸 발견했다. 기쁨이 샘솟았다. 흘려보낸 사랑은 숙성할 시간을 거쳤던 가 보았다. 소나무가 연약한 새 잎을 밀어 올리는 것을 지켜보는 일은 환희로웠다. 조용하나 결코 작지 않은 기쁨이었다.
틈날 때마다 수시로 그 소나무에 눈길이 간다. 죽음에서 다시 살아난 소나무가 대견하고도 기특하다. 소나무의 소생에 정성을 쏟은 분들도 어여뻐 보인다.
자신을 살려주신 분들이 아침마다 교문 안으로 들어서는 모습을 바라보는 소나무의 마음은 어떠할까? 천년을 산다는 소나무다. 소나무는 그 분들을 위해 사는 날까지 기도해 줄 것 같다. 필시 그 분들의 자녀들도 대를 이어가며 복을 받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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