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민족의 잠재력·저력 일깨워
이런 푸념은 1980년대부터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를 방문한 사람들이 우리 유산들과 비교를 하면서 구체화됐으며, 외국의 유물에 비해 왜소한 것은 물론, 1000년 전의 건물도 남아 있는 것이 없다는 얘기를 하면서 우리 조상을 책망하는 분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저자는 외국의 유물은 과학적 사고로 무장한 그들에 의해 체계적으로 정리되었지만 우리 문화유산은 그렇지 못하다고 꼬집어 말하면서 바로 이런 점이 우리 문화유산을 자랑스럽게 세계에 내놓지 못하는 이유라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자랑스러운 유산이 많이 있다면서 가장 대표적인 문화유산 7가지를 소개하고 있는 책 ‘한국 7대 불가사의`이다.
이 책의 저자 이종호는 고려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에서 유학을 하고 한국과학기술연구소, 에너지기술연구원등에서 일했고, 프랑스 유학 시절부터 세계 여러 나라의 유적지를 탐사하며 연구해 기초 없이 50층 이상의 빌딩을 지을 수 있는 ‘역피라미드 공법`등 10여 가지가 넘는 특허권을 출원하며 연구와 저술활동을 하고있다.
그는 이 책에서 7가지 유산에 대해 엄밀한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고 진면목을 밝혀내면서 우리 민족의 잠재력과 저력을 일깨우고 있다.
우리나라가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수의 유물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 바로 ‘고인돌`이다.
더군다나 단순히 선사시대 유물로만 알고 있었던 우리나라의 `고인돌`에는 놀랍게도 천문도(별자리)가 새겨져 있으며 고대 천문학의 발상지로 보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천문도 보다 무려 1800년이나 앞선 것이라고 한다.
역사적으로 고인돌이 중요시되는 이유는 청동기시대로 들어선 경우에만 그 민족이 국가라는 틀을 갖출 수 있다고 인정하기 때문인데 고인돌은 비록 유물이 발견되지 않더라도 그 자체만으로 청동기시대에 축조되었다고 받아들이기 때문이라 한다.
우리 고대사에 있어서 청동기 문명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가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데 왜냐하면 단국조선의 존재유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평양에서 기원전 3000년경에 축조된 황대성 위에서 발견된 고인돌은 기원전 2600년에 세워진 것으로써 단국조선 시대와 유사한 시기에 축조된 고대 국가의 존재 증거이다.
고대에 천문학이 통치 기술에 접목될 수 있었던 것은 농업과 직접적으로 연관되기 때문이다. 즉, 농사를 제대로 지으려면 적절하게 파종하는 등 사시사철의 변화와 절기를 제대로 아는 것이 필수 요소이며, 농사를 망치면 백성들을 통치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던 점을 생각하면 단군 시대에 돌에 별자리를 새긴 천문도의 발견은 대단한 우리 문화 유산임에 틀림없다.
또한, 아시아 여러 나라 중 신라에서만 출토된 `황금 보검`은 처음에는 하나의 국가만을 유지하고 있던 유럽이 지금의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로 나누어지게 만든 가장 큰 역사적 사실인 게르만족 대이동을 유발시킨 훈족이 신라에 동로마 제국의 기술을 전해주었으며 이를 통해 신라인이 훈족의 조상이라는 사실을 밝히는 과정은 참으로 놀랍다.
북방 기마 민족인 흉노족은 중국과 오랜 전쟁을 벌이게 되는데 흉노의 한 일파가 서천하면서 훈족이라는 이름으로 게르만을 공격하여 게르만의 대이동과 그 결과 서로마 멸망을 초래하였으며 다른 한 일파가 동천하여 품질 좋은 철이 풍부한 신라와 가야 지방에 정착한다.
경주 국립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문무대왕릉비문`에 신라 김씨의 내력이 소개되어 있는데 김씨는 김알지의 후손으로 그는 흉노 중에서 가장 강력한 부족이었던 김일제의 후손이다. 이처럼 신라에서 발견된 황금 보검은 당대 신라가 한반도 동쪽의 고립된 나라가 아니라 세계성을 지닌 나라이며 우리 민족의 구성을 다양성을 보여주는 유물이다.
개인에게 자아를 찾는 자아 정체성이 중요한 것과 마찬가지로 역사란 한 국가의 민족 정체성을 찾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 민족이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가장 큰 원동력은 역사의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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