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녀온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스승의 부인이 돌아가셨다. 나는 그 분이 그것들을 다 챙겨보고 돌아가셨을까 지금도 가끔 그 장면을 떠올리며 궁금해 하곤 한다. 우리 집도 사정은 다르지 않아 짬짬이 읽어보리라 하고 쌓아둔 것들이 많다. 그것들을 누가 다 갖다버려도 어쩌면 아쉬울 것이 없을지도 모르는데도 숙제거리처럼 쌓아두고 있다. 아마도 나 역시 죽을 때까지 그러고 살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인지 ‘죽기 전에` 라는 단어가 맴돌았다. ‘죽기 전에 꼭 가보아야 할 여행지 33`, ‘죽기 전에 꼭해야할 88가지`, ‘죽기 전에 꼭 먹어봐야할 50가지 먹거리`, ‘죽기 전에 봐야할 영화 1001편`, ‘죽기 전에 꼭 들어야할 가요 100곡` 등 ‘죽기 전에` 시리즈가 생각보다 많다. ‘100배 즐기기`라는 단어가 유행하더니 그보다 더 강조 어법으로 ‘죽기 전에` 시리즈가 나왔다.
정말이지 우리는 죽기 전에 무엇을 하고 싶을까, 궁금해서 대표적인 케이스로 ‘죽기 전에` 시리즈 책들의 제목을 찾아보니 평소에도 우리가 늘 하고 있는 보고, 듣고, 먹는 일들이다. 그럼에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은 그만큼 우리가 다람쥐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오감 채우기에 지루해하고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꼭 가봐야 할 여행지 33곳, 국내 편과 세계편의 목차를 훑어보았다.
국내 편에는 바다, 산, 꽃, 강을 주제로 선정되었고, 세계 편에는 대자연, 섬과 바다, 인류유산, 삶의 모습, 문화도시, 옛 마을 등을 다루고 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33곳은 너무 많다. 얼마 전에 나온 어떤 책은 딱 6곳이었다. 그 정도면 도전해볼만한 것 같은데.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그런 곳을 꼭 가보고 나면 죽어도 여한이 없을까, 어쩌면 좀 더 악착같이 살아서 다른 곳도 찾아가고 싶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조금 있으면 ‘죽기 전에` 시리즈는 ‘살아생전`으로 바뀔 것이다.
살아생전 삶의 의미를 새롭게 만들어낸 감동적인 수기를 읽었다. ‘문화의집`이라는 문화 공간 이용자 수기로 댄스 스포츠 강좌에 참여한 한 남자어르신의 글이다. “노인이라는 참담한 허울을 벗어던지고 조금 망가지는 쪽으로 문을 열었다.
내 인생 고쳐 쓰기 하자고. 우리회원 모두가 나이를 거꾸로 먹는 불사영생의 욕망을 피워 올린다. 누구든 댄스스포츠에 빠져보시라. 문득 외로움을 이기지 못해 내 한 몸 산산이 부서지는 그런 날, 혼자 상심을 삭이는 분을 위해서라도 뒤늦게 그러나 너무 늦지 않게 문화의집 취미프로그램 참여해보시라, 제2의 가정이며 외로움을 탈출하는 해방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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