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작(耕作)이나 재배(栽培)를 뜻하는 라틴어(cultura)에서 유래한 만큼 문화는 매우 오랜 역사를 지닌 말이다. 문화는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며 우리 인간 생활과 공존해왔고, 그러한 「문화적 삶」은 앞으로도 변함없이 지속되리라 본다. 그럼에도 왜 사람들은 21세기를 시작하면서 굳이 ‘문화의 세기`라 명명했던 것일까?
21세기는 컴퓨터와 IT산업의 발달로 인해, 그저 자판을 두드리기만 하면 누구나 필요한 지식을 얻고 공유할 수 있는 시대이다. 지식과 정보가 무한히 공유되기 시작하면, 그것에 대한 독점이 곧 힘이요 경쟁력이던 시대는 구시대로 전락하는 대신에, 기술력이 평준화되는 사회가 도래할 것이다. 세계가 자랑하는 명차 벤츠(BENZ)만 하더라도, 우리나라 현대자동차와 그 기술적 차이가 그리 크지 않다. 게다가 이제는 차 자체의 성능보다 디자인이나 차가 작동할 때 들리는 소리, 승차감 등 심미적인 요소가 오히려 제품의 선택을 결정하는 준거가 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소비자를 움직이는 강력한 힘이자 하나의 경쟁력이 되었다. 그래서 미래 학자들은 21세기를 가리켜 ‘문화의 세기`라고 말하는지도 모른다.
우리의 삶에서 가장 궁극적인 가치가 행복이라면, 행복은 물질생활보다는 내면의 정신으로부터 오는 것임에 틀림 없다. 최첨단의 경제 시스템이 재화의 풍요로운 생산과 소비를 약속하는 시대, 고급스럽고 세련된 삶의 양식이 우선시되는 시대일수록, 인간 삶의 기본적인 요구는 그만큼 더 절실해지는 법이다. 비유하자면 문화는 사람을 비바람과 추위로부터 보호하는 반듯한 형태의 집이면서 동시에 그 실용성이라는 일차적 목적을 넘어 사람의 삶에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데 기여하는 생활 공간이어야 한다. 그러한 삶의 보편적 요구와 실천의 총화를 가리켜 우리는 넓은 의미에서의 문화(Culture)라 한다.
한 나라의 국방력과 경제력이 공고해진다는 것은 곧 다른 약소국의 불가피한 희생을 대가로 하지만, 문화의 지속적인 발전은 행복에 대한 인류의 보편적인 염원을 결코 외면하지 않는다. 참으로 의미 있는 행복이란 다른 사람과의 유대속에서 형성되고, 선조들이 남긴 지적· 정신적 유산에 겸손히 귀 기울임으로써 얻어지는 기쁨이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다양한 삶의 형식 가운데 「문화적 삶」을 우선시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문화`라는 말이 거창한 학문과 사유의 전유물이 아닌 우리 일상적 삶의 일부로 많은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받아들여질 때 비로소 ‘문화의 힘`이 21세기를 선도하고 그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가치관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지금은 대통령 선거가 세상의 관심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 국민이 분배와 평등을 중시하는 정권과 성장과 시장 경제를 중시하는 정권을 엄밀하게 분석해보고 선택해야 할 시기이다. 이런 정치의 계절에「문화적 삶」을 논하는 것은 자칫 한가한 일이라 여길 수도 있으나, 변화와 선택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한걸음 물러서는 정신의 여유가 필요하며 바로 그것이「문화적 삶」에 근접하는 길이기도 하다.
과거 십년의 변화가 지금 일년의 변화보다 미미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우리의 삶은 너무도 바쁘고 빠르게 변하고 있다. 능률과 성장 위주의 결과 만능주의 세상인 것이다. 그러나 결과보다 과정과 출발점을 뒤돌아보고 그것들이 갖는 의미를 성찰하는 것, 무엇이 이익이고 승리인가 따지기 전에 무엇이 아름답고 무엇이 의미 있는 것인가를 분별하는 것이 삶의 행복을 설계하는 데 더 긴요한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