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시문 (가)에 등장하는 인물 ‘이상욱`의 상처에 대해 설명하고, 제시문 (나)의 감상을 바탕으로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방안을 논하시오.
[유의 사항]
① 논지나 근거를 구체적으로 제시할 것
② 1200자(±100) 분량으로 쓸 것
③ 시간은 120분임.
(가)
하지만 원장은 이제 또다시 시간을 허비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계획이 알려지고 나면 상당히 반발이 있으리라는 것도 미리부터 각오하고 있던 터였다. 이상욱 보건과장만 하더라도 이 일엔 그가 처음부터 섬사람들보다 앞장서 나서주기를 기대할 수 있는 위인이 아니었다. 원장이 알고 있는 내력이나 사람의 됨됨이로 보아 그는 마지막까지 일을 망설이고 있을 사람이었다.
그는 이 섬에서 일어났거나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에 대해선 사사건건 부정적이었다. 그가 이 섬에서 겪은 일들이, 그 자신의 어두운 과거가 그를 그토록 비관적인 사고의 인물로 만들어버리고 있음에 틀림없었다. 그의 모든 사고의 근거는 오직 이 섬의 내력을 들추어내어 그것만을 생각하고 그것 위에서 모든 일을 간단히 결론지어 버렸다. 그는 자신의 어두운 경험 세계와 불행스런 섬의 역사에 짓눌려 언제나 우중충하고 무기력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는 누구보다도 사람을 믿으려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아무것도 이루려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이루어 보려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 섬에서 먼저 구해내야 할 사람은 상욱 바로 그 사람이었다. 하지만 원장은 아직도 그 상욱에게 기대를 걸고 있었다. 이번 공사는 상욱에게 그의 사고로서가 아니라 눈에 보이는 현실로서 그가 일찍이 겪지 못했던 새로운 경험을 맛보게 할 수 있었다. 상욱을 구해내는 것은 이 섬의 모든 사람을 그 배반과 불신의 악몽으로부터 구해내는 것이 될 수 있었다. - 이청준, 『당신들의 천국』 -
(나)
폭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일은 옳지 않다
폭풍을 두려워하며
폭풍을 바라보는 일은 더욱 옳지 않다
스스로 폭풍이 되어
머리를 풀고 하늘을 뒤흔드는
저 한 그루 나무를 보라
스스로 폭풍이 되어
폭풍 속을 나르는
저 한 마리 새를 보라
은사시나뭇잎 사이로
폭풍이 휘몰아치는 밤이 깊어 갈지라도
폭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일은 옳지 않다
폭풍이 지나간 들녘에 핀
한 송이 꽃이 되기를
기다리는 일은 더욱 옳지 않다
- 정호승, 『폭풍』 -
[논제분석 및 출제의도 파악]
이 문제는 (가)에 등장하는 인물 ‘이상욱`의 행적을 통해 그의 상처를 진단하고, (나) 시의 감상을 바탕으로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가)에 등장하는 인물 이상욱은 소록도 원생들에게 자유와 사랑의 상징이면서 동시에 그 자유와 사랑을 배신한 사람의 혈육이다. 그는 아버지가 저지른 그 오욕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곧 원생들의 배신자가 되지 않기 위해 원장이 행하는 힘을 부단히 감시한다. 이러한 이상욱의 불신과 망설임은 ‘아버지`라는 심리적 외상에 의거하는 것으로 선천적으로 씻을 수 없는 원죄 의식을 지니고 태어났다고 스스로 믿고 있다.
·(나) 시는 자연 현상의 일부인 폭풍을 통해 인생의 진리나 역사 의식을 담아 내고 있는 작품이다. 폭풍을 인간의 삶에 다가오는 시련이나 역경이라고 한다면, 폭풍 속에 머리를 풀고 하늘을 뒤흔드는 나무나 폭풍 속을 나는 한 마리 새는 역경을 이겨내는 인간 또는 그 의지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폭풍이란 우리의 삶과 무관하거나 도피해야 할 재난이 아니라, 오히려 스스로 그 속에 들어가 견뎌내야 할 삶의 한 부분이라는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문제를 진단하고 원인을 분석한 후 문제 해결 방안을 제시한다. 이때 다른 여건이나 조건과 연관짓는 능동적이고 발산적인 사고가 필요하며 논리적 근거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여 자신의 의견을 진술해야 한다.
[학생 예문]최은영 대전 지족중 2학년
▲ 최은영 대전 지족중 2학년 |
하지만 치유되지 않은 마음의 상처로 인해 본인의 삶이 위축되고 불행해짐은 물론이요, 사랑하는 사람에게 아픔을 주고 사회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기는 사건을 만들기도 한다.
제시문 (가)의 이상욱은 자신의 혈육을 지켜준 소록도의 원생들을 배반한 사람의 아들이다. 그는 아버지가 지은 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스스로 자신을 속박하며, 모든 일에 부정적이고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그가 하려는 일은 섬의 사람들을 구해내는 것이지만,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은 어쩌면 그 원죄 의식으로부터 자신을 구출해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제시문 (나)는 인생의 시련을 ‘폭풍`에 비유하고, 그 시련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을 나무와 새를 통해 제시하고 있다. ‘폭풍`으로 인해 늘 괴로워하고 불안해하면서도 아무런 일도 하지 않은 채 바라만 보는 사람은 과연 그것을 이겨낼 수 있을까?
올해 미국 사회에 영향력 있는 인물 1위로 선정된 오프라 윈프리는 다른 사람에 의해 그녀가 사생아이며 한때 마약을 복용한 사실이 폭로된 적이 있었다. 이때 그녀는 이를 인정하고 어린 시절에 성폭행을 당했던 자신의 치부도 오히려 당당히 밝혔다. 또한 성폭력 가해자와 그런 자신을 경멸했던 아버지를 용서하는 진정한 용기를 보여줬다. 더 나아가 그녀는 불우한 사람을 이해하고 베푸는 삶을 보여줌으로써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남이 보기에는 약점이지만 오프라는 그것을 자신이 성장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았다.
몸에 난 종기도 눈물과 아픔을 감수하면서 피고름과 함께 뿌리를 뽑아야 그 자리에 새 살이 돋는 것처럼, 마음의 상처도 무작정 회피하기보다는 그 원인을 찾고 치유하고자 하는 용기와 노력이 필요하다. 인생을 살면서 겪게 되는 시련은 때로는 용기를 가지고 정면으로 부딪치고 감내함으로써 극복할 수 있다.
어떤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마음의 상처 때문에 아프다고 투정부리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그것이 자신의 몸에 독이 된다는 것을 안다면 혼자서 앓지 말자. 상처를 이겨낸 사람에게 조언을 얻거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기대어 고민을 시원하게 털어놓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말이 있듯,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그것과 당당하게 맞설 수 있는 자신감이 필요하다.
[총평]손민옥 대전 지족중 교사
▲ 손민옥 대전 지족중 교사 |
이번 논제에서는 먼저 제시문 (가)에 등장하는 ‘이상욱`의 출생과 삶을 통해 마음의 상처가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그 상처가 어떤 형태로 드러나고 더 나아가 어떤 문제를 야기하는지를 파악하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제시문 (나)를 토대로 구체적 근거와 함께 그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해결 방안을 모색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이 논술에서는 ‘문제 제기 - 문제 및 원인 분석 - 해결 방안 제시 - 논지 정리 및 전망`의 형태로 글을 구성하여 쓰는 것이 좋다. 이처럼 최은영 학생도 본론의 내용을 원인 분석과 해결 방안으로 나누어 자신의 논지를 잘 이끌어 가고 있다.
이 글은 서론에서 개인의 상처가 자신에게만 머물지 않고, 타인과 그가 속해 있는 공동체까지 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언급함으로써 본론의 내용을 전개해 나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 그리고 본론에서 제시문 (가)를 통해 ‘이상욱`의 상처가 원죄 의식에서 비롯된 것임을 잘 간파하고 있으며, 그 자신을 구원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함을 서술함으로써 자연스럽게 그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할 수 있도록 글을 이끌어 나가고 있다.
특히, 논거로 제시한 오프라 윈프리는 논자가 전개하고자 하는 논지를 드러내기에 적합하다. 그러나 최은영 학생은 제시문 (나)에 얽매여 다양한 해결 방안을 모색하지 못하고 있다. 똑같은 상처라도 환자의 건강 상태와 체질에 따라 의사가 다르게 처방하는 것처럼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도 다양하다.
차라리 결론 부분에서 서술하고 있는 다른 사람에게 조언 듣기나 고민 털어 놓기 등을 본문의 내용으로 끌어들여 서술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또한 논술은 글자수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차라리 원인 분석과 해결 방안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세 번째 문단은 생략하고 다양한 해결 방안을 서술하도록 권하고 싶다. 결론 부분에서는 상처 치유를 위해 용기를 갖고 당당히 맞서라는 자신의 논지를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있다.
좋은 논술이 되기 위해서는 개요 작성을 통해 글의 밑그림을 그리는 작업이 필수적이다. 왜냐하면 이를 통해 글의 결점을 보완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최은영 학생도 개요 작성과 검토 과정을 보다 철저히 했다면 글의 부족한 부분을 충분히 해결할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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