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언항 건양대학교 보건복지대학원장 |
영국에 가기 전 영국하면 아주 잘 사는 나라로 생각했는데 반드시 그렇지 않았다. 개인적인 경제생활은 우리 보다 못한 것 같았다. 대학에서는 교수 별로 신문을 구독하지 않고 도서관에서 집중 구독하고 교수들이 도서관에 와서 읽는 것을 보았다.
복사를 할 때는 두 쪽이 한 쪽에 들어가도록 축소하여 양면으로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매주 일요일 만나는 교회 아저씨는 한 벌로 겨울을 나는 것이 아닐까 할 정도로 매번 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우리가 겨울철 아파트에서 내복만 입고 지내는 것에 비하여 영국인들은 집안에서 세타를 끼어 입고 생활한다.
그들이 개인적으로 우리보다 가난하게 사는 것은 보다 많은 세금을 내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들은 이렇게 낸 세금으로 교육, 공원, 의료제도, 응급의료시스템 등 공공인프라에 투자하여 개인적으로는 좀 못한 생활을 하지만 국민 전체로는 보다 풍요롭게 사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가? 2005년 보건복지부 발표에 의하면 우리나라 응급환자 예방가능사망률은 39.6%라고 한다. 응급의료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으면 목숨을 건질 수 있는 환자가 100명 이라고 하면 39명이 사망한다는 말이다. 미국과 싱가포르는 응급환자 예방가능사망률이 각각 15%, 22.4%라고 한다. 응급의료시스템이 낙후하여 살릴 수 있는 귀한 생명을 잃는다 하니 실로 안타깝기도 하고 13위 경제대국이란 명성이 무색하다.
건강보험은 어떤가? 집안에 환자가 있어 입원하면 비상이 걸린다. 처음 며칠이야 가족들 끼리 돌아가면서 간병을 하지만 길어지면 간병인(看病人)을 두어야 한다. 병원은 당연히 입원환자에 대한 간호서비스를 제공하여야 하는데 왜 환자 및 가족에게 부담을 지우는가? 현재의 보험수가로는 입원환자를 충분히 간호할 수 있는 인력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충분한 수가를 주지 못하는 이유는 낮은 건강보험료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건강보험가입자는 세계적으로 낮은 보험료를 낸다. 2006년 보험료는 월 소득의 4.48%이다. 가까운 일본은 8.5%, 독일, 프랑스 등은 13%에서 19%의 보험료를 낸다. 낮은 보험료는 낮은 수가가 불가피하니 환자에게 제공되는 서비스 수준은 낮을 수 밖에 없다.
해결책은 개인이 덜 쓰고 보험료를 더 내는 것이다. 우리의 경제력으로 여력이 없다고 하지만 우리의 씀씀이를 보면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몇 년 전 형사정책연구원은 우리나라의 성산업 규모가 연간 24조원에 달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외국에 가본 사람이면 우리처럼 유흥산업이 번창하는 곳이 없다는 것을 알 것이다.
흥청망청 먹고 마시는 돈의 10%만 줄여도 응급의료제도를 확충할 수 있고 낮은 수준의 건강보험급여를 획기적으로 올릴 수 있다. 병이 나도 간병비 걱정하지 않고 입원하고, 교통사고와 같은 응급 시에도 신속하게 적정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제도를 만들기 위해서는 개인의 씀씀이를 줄일 수 밖에 없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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