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
그의 지갑은 비어 있지 않았다. 더 이상 오뎅을 먹지 않겠노라고 결심하였다. 그 후 30여년 간 나는 오뎅을 먹지 않았다. 꼬치에 꽂은 어묵이나 볶아낸 어묵 조각은 물론 오뎅을 넣어서 끓인 거라면 국물 한 모금 마시지 않았다.
오뎅 반찬 외에 다른 찬거리가 없으면 그냥 맨밥을 오물오물 씹어 삼켰고 동료들이 포장마차에서 오뎅 국물로 취기와 추위를 달랠 때 하릴없이 밤 하늘 별을 쳐다보거나 죄 없는 전봇대를 툭툭 걷어찰 뿐이었다.
학교를 마치고 군대에 갔다. 일식 삼찬의 배식판 위에 오뎅류 반찬들이 너무나 자주 올라왔지만 여전히 젓가락질을 하지 않았다. 혹한의 추위 속에서 부들부들 몸을 떨며 동계 훈련을 받을 때 나의 빈 창자를 유린하려던 오뎅 국물의 유혹은 뱀의 혀처럼 간사하고 진했다. 그러나 열네 살에 세웠던 오뎅에 대한 나의 결기는 대전차용 콘크리트 방호벽보다 굳건했다. 그 때도 오뎅을 먹지 않았다.
그렇듯 유치한 오기를 시시각각 다지고 무지로 충만했던 나였지만, 군 생활을 통해 비로소 미몽에서 깨어난 소중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함께 근무했던 동료들의 진지한 삶의 자세와 따뜻한 마음씨가 세상에 대해서 닫히고 편견으로 가득찬 내 사이비 의식을 일깨워주었다. 한 인간이 가진 성정과 문제해결 능력은 학벌이나 학력수준, 출신 고향과 별 관계가 없었다.
그들의 가르침에 대한 보답으로 나는 이 세상 사람 누가 되었건 그가 스스로 말해줄 때까지, 아니면 내가 그에 대해서 세세히 알게 될 때까지, 몇 가지 사항은 결코 질문하지 않겠노라고 결심했다. 정치인들의 악수버릇처럼 손쉽게 질문하지 않고, 그들에 대해 눈과 귀를 열어서 스스로 알아가는 과정을 거치겠다고 다짐했다. 군 제대 후 지난 20여년간 나는 그 약속을 지켜보려고 노력해 왔다.
첫째, 몇 학번이냐고 묻지 않는다. 따라서 당연히 어느 대학을 졸업했냐고도 묻지 않는다. 학력과 학벌을 묻고 따졌더라면 얻지 못했을 소중하고 존경스러운 친구들이 한둘이 아니다. 둘째, 어떤 사람에게 고향이 어디냐고 묻지 않는다. 고향을 물어보고 거기서 얻은 정보는 대개 두 가지 두드러진 목적을 갖는다고 본다.
자신의 입신출세를 위해 유용한 연줄망 하나를 추가하기 위하여, 혹은, 철저하게 그를 고립시킴으로써 나와 우리들의 정치사회적 유대를 강화하고 우리끼리 독점하고 있는 과실을 지키는데 이용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것도 아니면,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세치 혀의 공허한 놀림 혹은 무의미한 기계적 작동이거나. 내게 고향이 어디냐고 물어봤던 수백, 수천의 사람들 가운데, 그 대답 때문에 산천경개 수려한 내 고향마을을 다녀왔다는 사람을 아직 보지 못했다.
소중한 사람들은 내게 고향이 어디냐고 형식적으로 묻지 않고도 내 고향을 사랑해주었다. 셋째, 나는 사람들에게 ‘군대 갔다 왔냐’고 묻지 않는다. 낯선 사람에게 당신 세금 냈느냐, 라는 물음은 그를 잠재적 세금 체납자, 혹은 탈세자로 간주할 혐의가 있다. 징집 기피자를 추적해 형사처벌 하려는 것도 아니면서, 우리는 너무 쉽게 상대방에게 ‘군대 갔다 왔냐’고 묻는다.
대답을 머뭇거리기라도 하면, 너 ‘방우’지, 너 공익이지, 너 돈 써서 빠졌지, 라고 따진다. 끝내 말하지 않으면 병역 비리자쯤으로 치부하고 자신들만의 ‘군대축구’ 이야기에 열을 올린다. 징집 연령에 이른 청년들은 군대를 가서 더욱 강건해지고, 군대를 가지 않아도 이미 우리시대의 청년들은 너 나 없이 모두 심신이 건강하다. 병역의무의 이행이 명예로운 것일 수 있지만, 군대를 다녀오지 않았다고 해서 그가 잠재적 병역 범죄자인 것은 아니다. 장난삼아 물어야 할 일은 더욱 아니다.
인사 채용을 위한 면접의 계절이다. 삶에 진지하고 인간에 대해 따뜻하며 착실하게 능력을 함양해 온 우리시대의 청년들을 지방에 소재한 학교를 졸업했다는 이유로 낙방시키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인재를 발굴해서 채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체계적으로 준비해서 충실하게 가동한다면 학력과 학벌, 출신지와 같은 것들을 묻지 않고도 자질과 능력을 겸비한 청년 훌륭한 일꾼들을 가려 뽑을 수 있지 않겠는가.
사람귀한 줄 아는 앞서가는 기관`기업들이 이미 그러한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다고 하지 않은가. 가혹하리만치 너무 쉽고 안일한 질문을 던져서 보물 같은 사람을 얻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인내심을 갖고 그의 자질과 능력을 탐색하고 평가하는 열과 공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추신. 내 마음의 감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얼마전부터 오뎅을 먹기 시작했다. 30년만의 일이다. 그러나 금기로 한 세 가지 질문은 50년이 지나도 허물지 않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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