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 세계에는 ‘72% 법칙`이란 게 있다고 한다. 새우, 게, 어류 등은 몸 최대크기의 72%까지 자라면 성(性)이 바뀐다는 것이다. 영국 에든버러대학의 진화생물학자인 데이비드 엘숍 박사팀이 어류 등 하등 수중동물 121종을 조사했는데 조사대상 동물의 90% 이상에서 이 같은 현상을 발견했다고 ‘네이처`지는 발표했다.
그렇다면 사람은 어떨까? 사람도 여자와 남자가 바뀔 수가 있을까? 여자보다 더 여자 같은 연예인 ‘하리수`처럼 요즘은 의료기술이 발달하여 남자를 여자로 만들 수도 있고, 여자를 남자로 만들 수도 있다. 그렇지만 동물과는 달리 아직은 외형을 바꾸는 수준일 뿐 아이를 낳거나 낳게 하는 일까지는 어려운 모양이다. 하지만 기술이 더욱 발전하면 언젠가 가능하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용감한 여자와 예쁜 남자
‘누나 같은 아내`. 필자가 통계청장으로 근무하던 시절 홈페이지(www.nso.go.kr) ‘재미있는 시사통계` 코너에 썼던 제목 가운데 하나이다. 일반적으로 결혼 연령은 남성이 여성보다 세 살 정도 많은 것이 가장 좋다고들 말한다. 남자가 나이가 많아야 가정을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된다는 가부장적인 사회풍조의 결과가 아닌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최근들어 이런 풍조에 변화가 일기 시작하고 있다. 부부 중에 여성이 연상인 경우가 꾸준히 늘고 있는 것이다. 1990년의 8.8%에서 2002년에는11.6%로 늘어났다.
재혼하는 남자가 처녀에게 장가를 들면 남자들은 “능력 있다”고 말하고, 여자들은 “늑대 같다”고 했다. 예전에는 그런 커플을 당연시했다. 그런데 지금은 거꾸로 재혼녀와 초혼남이 결혼하는 비율이 놀랄 만큼 늘어나고 있다.
1972년과 2002년을 비교하여 보면 30년 동안에 0.5%에서 5.6%로 무려 10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어느덧 이제는 재혼하는 여자들이 총각에게 시집을 가면 여자들은“능력 있다”고 하고, 남자들은 “여우 같다” 며 부러운 시샘을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남자하면 영화 ‘터미네이터`에서 열연한 근육질의 할리우드 배우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생각난다. 그는 지금은 캘리포니아 주지사로 재선되어 정치가로 변신하는데 성공한 사례이기도 하다. 그리고 영화 속의 인물이 아닌 역사 속에 실존했던 인물 중에서 찾는다면 ‘항우`를 꼽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중국의 대표적 경극 ‘패왕별희`의 주인공이기도 한 항우의 이름 앞에는 항상 ‘역발산 기개세(力拔山 氣蓋世)`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힘이 산이라도 빼어 던질 만하고 세상을 덮을 정도로 기력이 웅대하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그가 “문자는 제 이름을 쓸 줄 알면 충분하다”라고 말했다는 기록이 사기(史記)에 있는 것을 보면 머리를 쓰는 데는 별로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뇌본사회`엔 근육보다 두뇌가…
이렇게 육체적인 힘이 많이 필요했던 지난 오랜 세기 동안에는 당연히 남자들이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사회의 주도권을 잡아갔다. 역사적으로 부나 인간의 능력의원천이 변화해온 과정을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다. 농업사회는 아무래도 토지가 부의 근본이었던 지본사회라 말할 수 있다. 그러다가 점차 산업사회로 이동하면서 돈이 돈을 버는 시대 즉 자본사회로 옮겨갔다. 그러면 21세기는 어떤가? 무엇보다 사람의 두뇌에서 나오는 정신적인 능력이 가장 중요한 지식정보화사회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제는 부의 근본이건 인간으로서의 능력이건 더 이상 근육의 힘이 아니라 그 사람의 지적 능력에 따라 평가받는 시대가 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른바 두뇌가 부의 근본인 ‘뇌본사회`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더 이상 예전의 “여자가…” “사내가…”하는 식의 이분법은 맞지 않는다. 오랜 시간동안 양성이 역할 분담을 통해 조화를 이루면서 살아온 것처럼 새로운 시대에 맞는 역할 재정립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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