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책읽기]평범한 유머 NO… 진지한 유머 Y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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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책읽기]평범한 유머 NO… 진지한 유머 YES

13편의 블랙코미디 한권으로

  • 승인 2007-10-09 00:00
  • 신문게재 2007-10-10 9면
  • 김필수 대훈서적 기획실장김필수 대훈서적 기획실장
마지막 대반전 코웃음 자아내
사회문제에 저자의 주장 가미


▲ 흑소 소설(저자: 히가시노 게이고)
▲ 흑소 소설(저자: 히가시노 게이고)
13편의 전혀 다른 단편들이 하나의 작품과도 같은 인상을 주면서 톱니바퀴처럼 연관성을 갖게 만든 이야기꾼의 소설이 소리 소문 없이 판매되고 있다. 이 소설은 다시 독소소설`·괴소소설로 이어지고 있으며, 책을 한 번 들면 다른 단편까지도 끝까지 읽게 만든다.

이 책의 저자 히가시노 게이고는 1958년 오사카에서 태어나 오사카 부립대학 전기공학과를 졸업했다. 엔지니어로 근무하는 한편 미스터리 작품을 집필하기 시작한 그는 1985년 『방과후』로 제31회 에도가와 란포 상을 수상했고, 이를 계기로 전업작가가 됐다.

이공계 출신이라는 그의 특이한 이력은 《게임의 이름은 유괴》에서도 인터넷의 무료메일, 게시판, 불법 휴대전화, FAX, 비디오 카메라 등 하이테크 장비를 이용해 무사히 몸값을 받아내고 유괴를 성공해내는 장면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에도가와 란포 상은 그 해의 가장 우수한 추리 작품에 수여되는 상으로 처녀작이자 수상작인 『방과후』로 화려하게 등단한 히가시노 게이고는 일본 내에서 매우 높은 평가를 받는 작가이지만 유독 한국에서는 그 명성과 실력에 맞는 인지도를 쌓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1999년 제52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한 『비밀』은 우리 나라 독자들에게도 친근한 작품으로 엄마의 영혼이 딸에게 빙의된다는 다소 충격적인 소재를 다루었다. 이 작품은 청순한 이미지로 한국에서도 인기가 높은 히로스에 료코 주연으로 영화화돼 한국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은 바 있다. 여러 말보다 그의 작품 하나를 살펴보자.

‘임포그라’
모 대학 약학과 조교로 있는 친구 닷타가 어느 날 뜬금없이 주인공에게 연락을 한다. 대학연구실로 찾아간 나는 친구가 건네주는 이상한 약의 효능에 대해 이야기를 듣는다. 얘기인즉 원래 강력한 발모제를 만들기 위해 연구를 하다가 우연히 약을 만들었는데, 성적불능상태의 부부들에게 필요한 약이 아니라 그 반대의 약을 만들었다는 거다. 그러니까, 이 약을 먹으면 24시간동안 성적 불능 상태가 되는 약이라는 말이다. 정확히 말해 임포그라를 만드는 약인 것이다. 나는 이런 약을 누가 사용하겠냐면서 코웃음을 쳤지만, 친구 닷타는 주인공의 직업이 광고기획자이기 때문에 의뢰하는 거라면서 판매할 방법을 찾아달라고 부탁한다.

다음날 회사에 가서 인터넷 게시판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임포텐츠가 되는 약이 있으니 원하는 사람은 메일을 보내라고 글을 올렸다. 결과는 놀랍게도 금방 메일이 도착한 거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이 그런 약을 원하나 했더니, 역시나 남편이 바람을 피우는 걸 알고 있는 부인들이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광고를 시작한다.

‘남편의 외도로 고민하시는 여성들에게 희소식! 다른 여자에게 남편을 빼앗기기 싫은 여성분, 당사에 전화만 하십시요. 임포그라 연구소.’

물론, 임포그라 연구소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며, 승승장구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매출이 급감하기 시작하더니 주문이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이상하다 하면서 주문이 들어오지 않는 이유를 알아보니, 처음 임포그라 약을 사용했던 주부들이 이제는 남편이 회식한다고 하는 날이면, 점심 식사후 남편에게 전화해서 한마디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여보 오늘 제가 모닝커피에 임포그라 약을 넣었어요’. 그러면 효과는 약을 사용 한 것과 같다는 거다. 주인공은 이런 상황을 다른 사람에게 들은 것이 아니라 본인이 직접 체험 하게 된다. 그것도 마누라에게 직접 이런 황당한 말을 듣고 오랜만에 만난 애인과 호텔까지 갔다가 황당하면서도 이건 아닌데 하면서 홀로 호텔을 나선다.

마지막의 대 반전이 코웃음을 치게 만들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블랙 유머소설집으로 정의할 수 있다. 이 책에는 13편의 블랙 코미디가 있으며, 눈물의 대가로 통하는 히가시노 게이고가 쓴웃음에 대해 썼다는데 의의가 있다.

탁월한 소설을 써낸 작가보다 예쁜 얼굴의 평범한 여자 작가에 주목하는 편집자, 거대가슴에 대한 욕망이 강박증으로 이어진 사내의 웃기는 행동, 어린이들의 꿈과 희망보다는 좀더 많은 상품을 팔기 위해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내는 회사, 남들은 볼 수 없는 심각한 환경오염을 시력 10.0의 시력을 가지고 미세한 먼지까지 볼 수 있는 남자, 가능성 없는 작가를 잘라내기 위해 술수를 쓰는 출판사. 히가시노 게이고는 사회 문제에 대한 자신의 주장을 담아냄으로써 단순한 유머가 아닌 진지하게 웃기는 유머 소설을 써내려간다.

작가는 이 책을 탈고한 후에 “다시는 이런 단편을 쓰지 않겠다. 단편이 장편을 쓰는 것보다 몇 배는 더 힘들다”라고 했듯이 이 책을 읽어보면 그가 진심으로 그렇게 말했다는 사실을 알수 있다. 원래 웃음과 눈물은 하나의 쌍이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작가가 웃음도 줄 수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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