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일순 대전서원초등학교 교사 |
내 아들딸을 바라보는 학부모들의 눈에 아침 햇살 보다 찬란한 사랑이 담기어 있다. 그 사랑은 자신을 화안하게 물들인다. 꽃등을 단 듯 주변까지 화사하게 밝혀주고 있다. 엄마 아빠를 발견한 아이 눈에도 태양이 뜬다. 부모 자식간의 사랑은 이런 것인가 보다. 꿈이 되고, 햇살이 되고, 살아갈 힘이 되는.
기운이 용솟음치는 손자, 손녀를 바라보는 자체만으로도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며 벙글대고 있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들. 삶은 축복임에 틀림없다. 세세년년 이어져 내려오는 내리사랑, 이 사랑 하나만으로도.
눈으로, 마음으로 사랑을 교감하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가만히 훔쳐보는 내 가슴에도 햇살 같은 기쁨이 옮겨 앉는다.
연일 지겹게 쏟아지던 빗줄기가 어제 밤까지 계속되었는데, 오늘은 청명하게 개었다. 운동장의 흙까지 푸실거리는 것이 운동회를 하기에는 최적의 날씨이다.
우리반의 까불이인 승재네 집에서는 지금 마악 아빠랑 할머니가 오셨다. 승재는 할머니를 껴안고 방방 뛴다. 이내 아빠 팔에 매달려 헤헤거리는 녀석. 그 아이를 받아 안는 아빠 얼굴에도 햇살 같은 기쁨이 번진다.
이런저런 모습 지켜보던 내 눈에 돌연 눈물이 핑 돈다. 가슴 한 켠이 젖는다. 밀쳐둔 세월 저쪽, 엄마를 그리워하는 열 살 어린 딸아이의 시무룩한 모습이 떠올라. 운동회 날 팔뚝에 찍힌 도장 내려다보며 눈물 글썽댔겠지. 친구들을 부러워했겠지.
아이가 엄마를 필요로 하던 순간에 왜 나는 달려가 곁에 있어 주지 못했을까. 내 삶에서 이 보다 더 중요한 일이 무엇이 있다고.
지금이라도 달려갈 수 있다면 어린 딸아이의 운동회에 쏜살 같이 달려가 함께 기쁨을 나누고 싶다. 달리기에서 꼴찌 했다고 눈물 글썽이면 어깨 토닥여 주고 고운 옷 입고 춤을 추면 운동장 가운데로 뛰어 들어가 예쁜 그 모습을 사진기 속에 찰칵찰칵 담아두고 싶다.
아이는 훌쩍 자라 부모 곁을 떠나고, 나는 지금 흘러간 시간을 반추하며 내게 부여된 기쁨을 온전히 싸안지 않았음을 아쉬워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시간은 흐르고 있다. 영원히 우리가 가 닿을 수 없는 곳으로.
짧은 상념에 빠져 있다보니 우리 반 아이들의 달리기 순서다. 바짝 긴장한 채 출발선에 선 아이들, 있는 힘껏 혼신을 다 해 달리고 있는 아이들. 그 틈바구니에서 결승선까지 뛰쳐나와 진을 치는 젊은 엄마들의 자식 사랑에 잠시 행사 진행에 차질이 빚어진다. 어떤 맹렬 엄마는 달리는 아들 곁에서 팔을 마구 휘두르고 지축까지 쿵쿵 울려대며 함께 달리고 있다. 그런 모습조차 마음껏 축복해 주고 싶은 오늘은 우리 학교의 운동회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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