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 밖]정복당한 여인들, 그리고 아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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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과 밖]정복당한 여인들, 그리고 아리랑

  • 승인 2007-10-03 00:00
  • 신문게재 2007-10-04 21면
  • 최충식 논설위원최충식 논설위원
아리랑 공연을 보면 교차한다는 3색 감정. 감탄, 다음은 혐오, 끝에는 우린 저런 것 안 해도 된다는 안도감. 여기에 반동의 노래를 듣고도 피정복국 여인을 위로한 정복자 칭기즈칸의 아량 같은 것까지 더해져야 할지. 난해하다.


고양이처럼 팬과 안티팬이 교차하는 동물도 드물 것이다. 집에서 길러도 보고 품으로 파고드는 녀석을 안고 자기도 했지만 늘 묘한 느낌을 준다. 2년 전에 방영된 드라마가 어제 본 듯 눈에 선한 것도 고양이 덕이다.

때는 칭기즈칸이 호라즘 제국을 함락시킨 다음, 무하마드 술탄의 태후는 귀여운 고양이를 안고 있었다. 칭기즈칸의 비(妃)는 그 고양이에 강샘이 났는지 사흘만 빌려 달라고, 그렇게 명해 달라고 조른다. 칭기즈칸은 그 말대로 청하지만 태후는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긴장감이 흐를 새도 없이, 칭기즈칸의 욱한 성미가 발동한다. 여자여! 제국을 잃은 주제에 뭐 그리 잘났다고? 칭기즈칸이 날렸을 멘트다. 이때 등장한 책사 야율초재가 ‘노래 일발 장전`으로 험악한 공기를 바꾸고 칭기즈칸 일동의 마음은 광막한 몽골의 대초원에서 뛰논다는 시추에이션.

이윽고 평정을 되찾은 칭기즈칸은 다시 이슬람의 태후에게 가무를 부탁하지만 여간 깐깐하지가 않다. 죽이네 살리네 옥신각신하고 나서야 술탄의 여인들은 구슬픈 노래에 곁들여 간드러진 춤을 춘다. 감동 먹은 칭기즈칸은 타르칸 태후를 위로하기까지 한다. 군기 빠지는 소리를 감지한 칭기즈칸의 막내동생이 돌연 칼을 쳐들어 가무를 중지시킨 것은 이 무렵이다.

바로 그 사내, 칭기즈칸의 막내동생이 필자 상상 속에서 어젯밤 아리랑 공연이 펼쳐진 능라도 하늘에 컴퓨터그래픽처럼 그려졌다. 혁명생애와 선군정치를 찬양하는 예민한 속살이야 ‘편집`했지만 핵보다 위력적인 사상적 무기다웠다. 아동학대 논란도 70년대 카드섹션에 차출되어 저들처럼 오줌 싸며 연습해본 필자로서도 뼈저리게 이해한다.

비위에 거슬리지만 우리는 영접이라고, 인내라고 부르자. 아무르강 상류의 에벵키족 사전에는 ‘아리랑`이 ‘영접하다`, ‘인내하다`로도 나와 있다. 대통령이 금단의 과실인 집단체제 최면술을 봐도 되느냐의 시비는 그만 내밀치자 해도, 세계 최대의 스타디움 이벤트 깜짝쇼를 보고 오페라 아이다 뺨치는 장엄한 서사시라며 탄성을 삼켰을지, 보여줄 게 겨우 저것인가라며 여인을 위로한 칭기즈칸의 안쓰러움으로 돌아갔을지, 궁금증은 여전하다.

더 궁금한 것은 칼을 뽑아 호라즘 가무를 중지시킨 칭기즈칸 막내동생 같은 사람이 일행 중에 없었을지 여부다. 그 동생이 격해 칼을 빼든 이유는 노랫말의 반동성에 있었다. ‘동방에서 들불이 번져와 낙원을 잿더미 만들었다네. 눈물로는 그 불길 잡을 수 없어라. 아아 원통하다 원통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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