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정숙 충남예술고등학교 교사 |
투박함의 상징이면서 왠지 모를 향수와 어머니의 숨결을 떠올리게 하는 ‘옹기`. 나의 아버지는 그런 옹기를 만드는 옹기장이셨다. 고향 마을에서 지금 살고 있는 동네로 이사 온 것도 아버지의 직업 때문이었고 내가 대학교 다닐 때까지 그 동네에서 옹기 만드는 일을 하셨다. 그런 이유로 난 옹기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옹기장이의 일상을 늘 접하며 살았고 자연스레 아버지의 옹기장이 근성을 체득하게 되었다.
이번 추석 명절의 TV다큐에서 아버지를 떠올리게 한 것은 비뚤어졌거나 금이 간 옹기를 「주저함 없이 망치로 두들겨 산산조각 내는」 장면이었다. 어릴 적 소꿉놀이에 주로 주방용기로 쓰이던 사금파리가 엄청나게 쏟아지던 광경이기도 하다. 나 또한 어릴 적 아버지가 생산해내는 옹기와 사금파리를 무수히 보았지만 그 당시에는 이해를 잘 못하였다. 조금 삐뚤어져도 음식을 담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는데, 어렵게 만든 그릇을 왜 다 깨버릴까? 아깝지도 않으신가? 하지만 내 소꿉놀이의 살림을 장만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니 굳이 “깨뜨리지 마셔요~” 할 이유는 없었다.
꽤 여러 날에 걸쳐 만들고, 일정기간동안 그늘에서 건조시킨 ‘반듯한` 질그릇에 몇 차례에 걸쳐 양잿물을 바르고, 양잿물이 ‘적당히` 마르면 길게 뻗은 가마 속에 열을 지어 쌓아 놓고 며칠동안 밤낮없이 불을 때셨는데 가마 속의 화력을 수시로 확인해야하는 까닭에 불 때는 동안 아버지의 낮과 밤은 일정치 않았었다.
그렇게 힘든 노력과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옹기가 “찰그랑”소리를 내며 옹기장이의 손에서 깨지던 장면과 무표정이던 아버지의 얼굴. ‘비뚤어진 것은 가치가 없다`는 것이 깨뜨려지는 이유였고, ‘더 나은 모양을 위해서는 아까워함을 버려야한다`는 옹기장이 근성이고 철학이셨다. 하잘 것 없어 보이는 진흙덩이가 아버지의 손에서 반듯한 질그릇으로 변해가는 것도 신기했지만 ‘옹기장이 근성`이라 불리던 아버지의 그런 확고함을 난 무척 닮고 싶었었다.
아버지는 내가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내가 교사인 줄을 모르신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는 “몇 날 며칠 공들여 만드신 옹기를 주저함 없이 깨뜨리시던 아버지의 옹기장이 근성”이 기둥처럼 박혀있다. 그래서 나 또한 밤낮없이 애를 쓰고 있다. 내가 맡고 있는 학생들에게 가장 ‘적당한` 수업을 할 수 있기 위해, 또 더욱 ‘반듯한` 학생들이 되도록 지도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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