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면은 아름답고 끝은 씁쓸한… 가을 영화
방탕한 도시의 남자, 영수(황정민). 알콜로 간이 굳어 가는 병을 얻은 그가 애인 수연(공효진)도 모르게 숨어든 곳은 시골 조그만 요양원. 폐농양으로 8년째 요양원 생활을 하고 있는 은희(임수정)는 이 낯선 남자에게 손을 내민다. “우리 같이 살래요? 나중에야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그건 그때 따지죠.” 영수는 은희를 품에 안는다. 방금 받은 제안이 어떤 미래가 될지 깨닫지 못한 채.
‘행복`은 죽음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는 점에선 ‘8월의 크리스마스`와, 사랑 안에서 서로 다른 꿈을 꾸는 남녀의 이야기라는 점에선 ‘봄날은 간다`와 맥이 닿는다. 허진호 감독은 더 이상 잃을 게 없는 두 사람을 외진 곳에 밀어 넣고 사랑의 밀물과 썰물을 응시한다.
여자의 헌신적은 노력 덕분에 몸을 회복한 사내는 여자를 버리고 떠나고, 여자는 사내에게 소리친다. “개××, 내가 어떻게 널 대했는데….”
빤한 이야기 그리고 통속적이다. 가진 걸 다주었는데 버리고 떠난 사내, 70년대 호스티스물을 연상시킨다. 허진호 감독은 전작과는 달리 신파의 끝까지 밀어붙인다. 물론 ‘행복`의 맛은 줄거리에 있지 않다. 조금씩 조금씩 가까워지고 묻어가고, 밀고 당기는 섬세한 심리를 지켜보는데 있다. 지극히 현실적인 대사와 꼼꼼한 묘사는 남녀의 내면에서 일렁이는 사랑의 파도를 드러내 보여준다. 사랑은 꿈꿀 때 행복하다. 나눌 때도 행복하다. 하지만 사랑이 떠난 자리도 행복할까. 그걸 직설적으로 묻는 영화 ‘행복`은 그런 점에서 잔인하다.
여자를 배신하고 떠나는 영수 역의 황정민은 허진호 감독의 영화 속에서 가장 나쁜 남자를 연기한다. 사랑의 단맛에서 깨어나 도시를 꿈꾸는 영수를 황정민은 거친 듯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어느 때보다 맑은 얼굴로 은희를 소화한 임수정은 당차고 씩씩하다.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남녀의 조합은 시간을 흐를수록 어울림을 넘어 깊이를 지닌다.
“왜 뽀뽀를 하고 있는데도 뽀뽀가 하고 싶지?”하던 닭살 돋는 사랑이 “나 이렇게 안 살았거든?(너 도대체 왜 그래?)”하고 변해가는 이야기. 남녀의 감정이 그리는 변화무쌍한 곡선만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행복`은 충분히 흥미롭다. 영화가 보여주는 섬세한 묘사는 역시 영화를 봐야만 알 수 있다. 15세 이상. 3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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