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한편으로 깨달음도 적지 않았다. 대표적인 것이 스트레스가 결코 현대인의 발명품이 아니라는 점이다. 앨빈 토플러는 짧은 시간 동안 많은 변화를 경험하면 더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했다. 지당한 말이지만, 바보만이 쾌활하게 인생을 즐긴다는 하이데거의 주장이 스트레스 해소에는 더 도움이 된다.
선사의 조상들은 촉촉한 대자연을 경이로운 눈으로 응시하고 움집에선 한없이 행복했을까? 아니다. 무자비한 약탈과 살벌한 도륙과 언제라도 닥칠 죽음에 시달렸다. 조선시대 농민에겐 쩍쩍 갈라진 논바닥에 부양할 가족이 겹쳐지는 것도 스트레스였을 것이다. 더 거슬러올라가, 정처 없이 떠도는 백제 유랑민의 스트레스는 어떠했을까?
과거로 올라갈수록 주로 생존이 행동의 준거가 됐다. 어디선가 곰이 나타났다. 공격할까 도망칠까 죽은 체할까, 선택지는 두세 가지였다. 이러한 인간의 반응은 발달사적 측면에서는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동의해야 한다. 그 맹수의 자리에 해고, 시험, 승진, 실패 등 달라진 위험이 비집고 섰다. 수명과 건강을 갉아먹는 것은 곰의 위협보다 짹짹거리는 생쥐인 경우가 많다. 질주하는 자동차의 굉음보다 때로는 옆자리의 게임하는 키보드 소리가 더 위협적이다.
▲ 장성철 교수(건국대 멀티테라피학과)의 두통 치료용. |
너무 스트레스원을 줄이고 피하고 없애려다간 도리어 부풀려진다. 주부도 남편도, 사장도 사원도, 며느리도 시어머니도, 고향 떠난 자식과 그 자식 떠나보낸 부모도 함께 스트레스를 받는다. 스트레스에 관한 글을 쓰면서도 스트레스 유발 호르몬은 분비된다. 나쁜 스트레스(distress.디스트레스) 아닌 좋은 스트레스(eustress.유스트레스)라고 믿을 뿐이다. 원시림에서 생존을 위협하던 곰은 이 순간에도 바스락거린다. 도망칠 것인가 공격할 것인가. 현명하게 판단하시길.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