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세평]신정아의 선물 하나, 몇 학번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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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세평]신정아의 선물 하나, 몇 학번이십니까?

  • 승인 2007-09-19 00:00
  • 신문게재 2007-09-20 20면
  •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신정아가 돌아왔다. 감히 예일대 박사를 참칭해 대학을 농락하였다는 그녀가, 이번엔, 미모를 앞세워 국정을 농단한 것이 아니냐는 혐의까지 받고 있다. 샅샅이 뒤져서 발가벗기려는 집요한 언론간의 경쟁은 급기야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신의 그녀를 앞으로 세우고 뒤로도 세워 사진 기사로 내보냈다.

사진을 입수하지 못한 다른 일부 언론은 낙종했다는 통한의 눈물을 흘릴법한데 오히려 ‘특종`한 경쟁 신문의 누드사진 기사를 통째로 오려와서 독자들에게 서비스하는 과잉 친절을 베풀었다. 누드 사진을 게재하는 것이 국민의 알권리에 복무하는 것으로 판단했다는 문화일보의 ‘저널리즘적`인 해명은 두동지고 궁색하다. 더불어 문화일보를 비난하는 다른 ‘낙종일보`들의 행보도 추레할 뿐이다. 알몸 사진을 싣지 않았을 뿐이지 문화일보와 ‘낙종일보`들의 기사내용은 오십보 백보 아닌가?

물론 신정아 사건이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과 경고는 결코 가볍지 않다. 신정아의 학력위조 혐의나 지위를 남용해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다고 의심되는 사람들의 행위가 사실이라면 그에 따른 응분의 댓가를 치르게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검찰조사를 비롯한 사법처리의 추이를 지켜봐야 하겠지만, 이번 사건을 통해 우리는 신정아를 허위 학력의 공연장에서 거짓 춤추게 한 학벌·학력 차별주의의 폐해가 얼마나 깊고 촘촘한지,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정교한 학력 연좌제의 사슬 앞에 한 개인이 얼마나 무력할 수 있는지 반추해 볼, 아스라하지만 의미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신정아의 허위학력 사건이 불거지자 봇물 터지듯 여기저기서 저명한 인사들의 그럴싸한 학력들이 가짜라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일부는 주위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다른 이들은 스스로 오랫동안 감춰 온 허위학력의 진실을 고백하였다. 외국 대학을 졸업했다고 떠들었지만 그것은 진실이 아니며, 국내의 저명 대학 출신이라고 큰 소리로 말했지만 실은 입학할 뜻을 가슴에 품었을 뿐 문턱을 넘지는 못했다고 목소리를 낮췄다. 대부분의 저명 인사들이 국내외 유명 대학을 허위 학력의 대상으로 삼을 때 가수 인순이는 중졸 학력이 부끄러워 고졸이라고 속여 온 자신의 행위를 용서해 달라고 울먹였다. 고등학교에 가지 못하고, 가족의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부득이 밥벌이 전사로 나설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어디 인순이 뿐이겠는가?

가난 때문에 대학 합격증을 가슴에 묻어버린 사람, 가난한 형제들을 위하여 고등학교 입학을 포기한 사람, 언감생심 중학교 진학을 꿈도 꾸지 못하고 열 네 살 어린 나이에 산업 일꾼이 되어 고사리 같은 손으로 기계를 돌려야 했던 우리의 동무들이 어디 한 둘인가? 더러는 ‘나도 졸업장이 있다`면서 대폿집의 탁자를 내리치고 싶은, 지독한 가난 때문에 국민학교 졸업장을 만져보지도 못한 우리의 동무들이, 아버지들이 어딘들 없겠는가? 고졸이라고 속여야만 했던 아픔, 중학교는 마쳤다고 어거지를 써야 하는 비애, 무시당하기 싫어서 최소한 국졸은 된다고, 나도 동창들이 있다고, 나도 연말이면 가야 할 동창회가 있노라고 우겨야 하는 슬픔들이 어디 유명 인사들의 거짓 학력 행각과 같은 범주의 것이겠는가?

‘몇 학번이냐`는 단순한 질문이, 대학을 가지 못하고 따라서 학번을 같고 있지 못한 이 땅의 수 많은 사람들 한테는 가슴에 꽂히는 비수와 같은 폭력이 될 수 있다. 학번은 강제로 할당받는 주민등록번호와 같은 것이 아니다. 국가가 누구에게나 부여한 주민번호를 은밀히 물어보는 것마져 경계해야 할 영역이거늘, 가난 때문에 포기해야 했던 ‘학번`을 함부로 물어보는 것은 폭력의 행사이자 허위학력 제조의 공범이 되는 행위가 될 수 있다. 학번을 묻기 전에 그 사람의 됨됨이를 보고, 어느 학교를 졸업했냐고 따지기 전에 그 사람의 능력을 우선 살펴보려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신정아가 우리들에게 준 선물, 값지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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