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중시기∼도불직후까지 80여점 전시
재건현장·거리풍경 등 시대상황 그려
▲ 취야(1951) |
근현대사의 질곡 속에서도 생을 마감할 때까지 단 한 순간도 붓을 놓지 않았던 고암 이응노. 그의 예술혼이 대전에서 부활했다.
이응노 화백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쳐 1960년대 공안사건에 연루돼 옥고를 치르기까지 근현대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삶의 대부분을 보냈다. 그리고 1989년 이역만리에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그는 오로지 그림을 통해 시대와 마주했고, 예술혼을 불태웠다.
이응노미술관은 이러한 고암의 예술 세계를 조명하기 위해 지난 11일부터 ‘고암의 수행적드로잉-난(難)·호(好)·수(髓)`전을 열고 있다. 이번 기획전에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시기부터 옥중시기를 거쳐 출소 후 도불(渡佛)직후까지 그려진 작품 80여 점이 네 개 전시실에 나뉘어 전시되고 있다. 이응노미술관은 이번 전시를 위해 이응노 화백의 파리 아틀리에를 비롯해 국내외에서 150여 점의 작품을 수집했으며, 국내 미공개작 50여 점도 이번 전시를 통해 선보이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문자 추상과 군상 시리즈 외에도 초기 드로잉 작품에서 다양한 재료가 사용된 옥중작품에 이르기까지 더욱 광범위한 고암의 예술세계를 만나 볼 수 있다.
▲ 구성(1969) |
해방과 한국전쟁 전후 시기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는 1 전시실에서는 급격한 사회적 변화를 토속적이면서도 해학적으로 그려낸 작품들을 만나 볼 수 있다. 이 시기 작품들을 통해서는 특히 당시 고암이 지녔던 시대정신과 민족정신을 엿볼 수 있다. 그는 1946년 작 ‘거리풍경-양 색시`에 ‘그들의 자태를 바라 볼 때에 눈물이 앞을 가려 마지안노라 하루라도 빨리 반성하야 새 옷을 벗고 직장으로… 제이국민의 현모가 되어주기를 원하노라`고 적고 있다. 1950년에 그린 ‘재건현장`, 전쟁의 와중에 야시장 풍경을 담은 ‘취야` 등은 모두 고암의 자화상이자 시대의 초상이었다.
2,3 전시실에 전시된 옥중 작품을 통해서는 ‘나에게 그림을 그릴 수 없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한다`는 말처럼 그의 삶에 있어 그림이 가지는 의미를 확인할 수 있다. 옥중에서 제작된 작품의 수만 무려 300여 점. 그는 재료를 구할 수 없던 옥중에서 간장과 고추장 등을 이용해 그림을 그리고, 나무도시락으로 오브제를 만들었다. 서대문교도소에서 휴지에 볼펜으로 그린 ‘서커스, 음악`을 비롯해 교도소 안에서 추위에 웅크린 모습을 담은 ‘자화상` 등 다양한 옥중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4전시실에 전시된 작품은 고암이 출소 후 파리로 돌아가 제작한 것들이다. 70~80년대의 대표적인 군상과 문자추상 작품들로, 입체 작품들도 함께 전시되고 있다.
이번 전시는 전체적으로 시대적 아픔과 개인적 고난이 어떻게 작품을 통해 나타나는지를 보여주고 있으며, 고암의 생애에 걸친 작품 세계의 변천 과정을 한눈에 확인시켜 주고 있다. 이 전시는 다음달 30일까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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