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광장]느림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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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광장]느림의 미학

  • 승인 2007-09-18 00:00
  • 신문게재 2007-09-19 21면
  • 조백근 대전 CBS 본부장조백근 대전 CBS 본부장
요즘 우리 사회는 ‘빨리빨리`를 넘어 ‘더 빨리` 현상이 온통 지배하고 있는 듯하다.
패스트푸드,퀵서비스,고속철도,초고속인터넷(光 LAN)...광고카피에도 ‘지금 필요한건 Speed!` 어디서도 여유를 찾아보기 힘들다.

당장 컴퓨터 앞에 앉아 인터넷 검색을 하면서 속도가 조금만 느려도 답답증과 함께 정서불안이 된다.

우리는 이처럼 ‘빨리빨리`를 도와주는 기기들로 완전포위 돼있다.
속도전의 총아로 꼽히는 컴퓨터와 핸드폰.
요즘 변양균, 신정아 ‘예술적 동지`가 벌인 스캔들이 레임덕현상에 휩싸인 청와대를 뒤흔들며 진진한 ‘러브레터`, 황당한 ‘누드사진` 공개 속에 이른바 지퍼게이트사건으로까지 비화되고 있다.

두 사람도 문명의 이기로 실컷 재미를 보다 결국 패가망신한 케이스.
속으로 불안에 떨면서도 겉으로는 태연한 척하며 시치미 뚝 떼고 있던 변 전실장은 움직일 수 없는 증거 앞에 끝내 고개를 떨구어야만 했다.

미국으로 도피했다 돌아온 신정아는 당초 자신의 컴퓨터에서 문제가 될 만한 것을 모두 서둘러 삭제했다.

하지만 검찰 사이버팀의 놀라운 복구실력은 ‘사랑하는 정아씨` 에게 보낸 이메일을 고스란히 찾아냄으로써 건방진 입을 무색하게 했다.

도대체 컴퓨터는 인간을 이롭게 하기위해 발명된 것인가 아니면 그 반대란 말인가?
삭제키를 눌러 날려버렸으면 날라가 버려야지 왜 남아있도록 만들어져서 당사자에게 이렇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주는가?

양쪽이 합쳐 4백통이 넘는 메일을 주고받았고 이걸 찾아낸 수사관들에게 읽혀졌으니 당사자들은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하고 부끄러운 얼굴을 들지 못했을 거 같다.

여기에 핸드폰 통화기록은 결정타가 됐다.
둘 사이의 ‘안으로 불타는` 열정은 고스란히 통화기록으로 남겨져있다.
‘언제, 어디서라도 할 수 있다`는 기치아래 유비쿼터스의 눈부신 IT기술은 두 사람의 부적절한 관계가 더욱 깊어지도록 친절하게 도왔다.

전화 또한 왜 들고 다니도록 간편하게 만들고 나아가 자세한 통화기록까지 남겨지도록 해서 잘나가는 인생을 이토록 망가지도록 한단 말인가.

이제 어쩐단 말인가. 높은 사람, 잘 나가던 사람들을 한방에 떨어뜨려버리는데 혁혁하게 일조한 이 두 개의 몹쓸 장비를 바라보며 중얼거리는 말.

“아무튼 기록은 남기면 절대 안 돼. 전화는 공중전화가 최고야. 메일은 육필로 쓴 편지가 왔다지.”
핸드폰 한통 때려! 메일로 쏴! 빠르고 그로 인해 편리하다는 장점이 우리를 끝없이 유혹한다. 하지만 이렇게 빠른 것만이 좋은 걸까? 물론 아니다.

‘빨리빨리`에는 ‘치밀함` ‘신중함` ‘정교함`이 결여되기 쉬운 법.
물론 정확한 신속이라면 얘기는 다르다. 여유를 갖고 호흡을 길게 가져가며 하는 ‘천천히`는 ‘빨리빨리`의 장점을 훨씬 능가한다.
충청도가 말도 늦고 행동도 상대적으로 뜬다고 꼬집는 말들을 많이 한다.

그 느림은 신호등 앞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급하기로 소문난 서울에서는 빨간 불에서 파란 불로 바뀌는 순간 이미 빵빵 경적소리가 무섭게 보챈다. 충청도에서는 신호등 앞에서 경적소리를 듣기 힘들다. 건널목에서 뛰는 사람도 보기 어렵다.

문화의 차이일수도 있지만 느림을 사랑하는 것 같다. 빠름의 편리함이 있지만 밀란 쿤데라가 ‘느림의 지혜`를 찬미했듯이 느림의 미학도 있다. 갈수록 더욱더 빠름을 강요하는 사회로 치닫는 게 우리네 현실이다. 하지만 패스트푸드에 맞서 슬로우푸드가 눈길을 끈다.

빨라서 좋은 문명의 이기 앞에서 보기 좋게 당한 씁쓸한 사건을 보면서 우리 사회가 서두르다가 화를 당하는 일이 없도록 숨 한번 몰아쉬는 여유와 안단테의 지혜를 가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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