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찻길을 복원하려는 관계기관의 노력에 힘입어 개화의 물결과 함께 뿌리내린 철길의 발자취가 조금씩 드러나게 된 것을 뜻 깊게 생각한다. 한때 광화문 신작로를 누볐던 바지런함은 오간데 없고 화석처럼 굳어버린 침목만이 웅크리고 있을지라도 남다른 소회를 느낀다.
한국철도는 올해로 108번째 나이테를 허리에 둘렀다. 한 세기가 넘는 긴 시간을 달려온 것이다. 한때는 근대화의 일등공신을 자임하며 영광의 세월을 구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자동차 대중화 시대가 되면서 철도는 서서히 쇠락의 그늘을 맞이했다.
나이로만 치자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장수기업이지만 정작 철도는 오랜 세월 홀대를 받아왔다. 지난 40여 년 동안 도로에 대한 투자는 크게 늘어난 반면, 철도는 제 자리 걸음을 하기에도 버거웠다. 이러한 우리 현실과 달리 해외에서는 철도의 재발견이 일어나고 있다.
우리는 철도 투자가 도로의 5분의 1정도 밖에 되지 않지만 유럽에서는 도로보다 철도에 두 배 이상이나 투자하고 있다.
일본은 물론이고 중국과 러시아, 심지어는 도로와 항공 산업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 미국조차 철도에 주목하고 있다.
‘철도 르네상스`라고 표현할 수 있는 이런 일이 왜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예전엔 미처 몰랐던 철도의 매력을 발견하기라도 한 것일까. 21세기 첨단 디지털 시대에 철도가 다시 주목받고 있는 것은 철도가 친환경·고효율 시대에 가장 적합한 교통수단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2005년 2월 교토의정서가 발효된 이후, 이제 세계 각국은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온실가스를 의무적으로 줄여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이러한 기후변화협약에 따라 우리나라는 2013년부터 온실가스 의무감축대상국에 포함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철도는 다른 교통수단에 비해 온실가스 배출량이 현저하게 낮다.
다시 말해 철도는 친환경성 면에서 다른 교통수단보다 우위를 점하고 있다.
환경비용과 에너지 효율성을 포함한 철도의 사회적 비용 절감효과는 도로의 약 42배나 된다고 한다.
철도가 미래가치를 지닌 교통수단인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철도의 가치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철도는 장거리 대량수송이라는 이점을 가지고 있다. 멀리 뻗어나갈수록 철도의 장점은 발휘된다. 필자가 남북철도 개통과 대륙철도 연결을 강조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철도가 우리를 대륙과 이어주는 날, 비로소 반도의 남쪽에 갇혀 있던 우리 경제가 크게 기지개를 켤 수 있다는 확신을 필자는 가지고 있다.
철도운송이 해상이나 항공운송보다 시간과 비용을 대폭 줄일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하지만 여타 운송수단과 철도는 근본적으로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비행기와 배는 출발지와 목적지만을 연결한다. 다시 말해 점과 점을 연결하는 데 있어서 그 사이의 공간은 생략된다.
반면 기차는 어떤가. 기차는 무수한 도시를 연결한다. 점이 계속 연결되는 선형적(線形的)인 구조를 갖는다. 그것은 기차가 지나가는 모든 도시에서 교역이 이뤄진다는 사실을 뜻한다. 기차가 지나가는 모든 도시에서 물건을 싣고 내릴 수 있으며, 사람이 타고 내릴 수 있다. 한마디로 모든 공간이 쌍방통행이 가능한 가역권이 되는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 철도가 대륙으로 달리게 되면 섬보다 못한 처지에 있던 우리나라는 지정학적 대변혁을 겪으며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이뤄낼 것이다. 예를 들어 만주나 시베리아의 천연자원을 들여오고, 또 이 지역을 거쳐 유럽으로 뻗어나가기 위한 가장 경제적인 통로는 철도다.
근대화와 산업화를 겪으며 108개의 나이테를 걸친 한국철도가 이제는 세계적인 철도 르네상스의 물결을 타고 대륙으로, 미래로 뻗어나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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