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걸 보고 돌아와서 괜한 엄포를 늘어놓고야 말았다. 내 사후에 원치 않은 무엇이든 공개하지 말라! 당신의 마음에, 당신의 입술에, 당신의 눈에 세 번 키스를 보내오. 나폴레옹이 조세핀에게 보낸 연서처럼 55만 달러를 줘도 절대 팔지는 마! 발견 즉시 태워! 청사에 남을 정도는 아니지만 할 일 없는 어느 작자가 이상(李箱)과 금홍과 같은 소설을 제멋대로 엮고 충무로에서 영화라도 찍는다면 아, 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연애편지를 안 들키려면 상대에 불리한 표현을 은근슬쩍 넣는 방법이 있다고는 한다. “사랑하오. 당신의 모든 것, 당신의 복부 팽만감과 그로 인한 은은한 향기까지도 사랑의 이름으로 온전히 사랑하오.” 망신거리에 애정의 당의정을 씌워 공개를 원천 차단한다. 제3자나 타의로 공개되기 전까지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또 연애편지는 자필로 말고 되도록 컴퓨터를 이용하라고 권한다. 그래야 공개되더라도 오리발 내밀 소지가 늘어난다는 얘기. 하지만 대통령의 ‘정책 오른팔`인 변양균 청와대 정책실장과 가짜 예일대 박사 신정아씨가 주고받다 들통난 애틋한 이메일 ‘러브레터`를 통해 이 방법이 졸책임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산타바버라 바닷가에서 함께한 추억 하며, 그러한 숭고한 과정을 거쳐 당신만을 사랑한다 만다 하던 과거 린다김을 향한 “부적절한” 연서보다 노골적이고 진한 연정이 담겼는지는 아직 모르나 사적인 연애편지를 신씨의 교수 임용 과정 등에 누가 개입했고 비호했나를 따지는 공적인 증거로 들이댄 것이다.
연애편지는 유치하다. “사랑해서 이러다 펑 터져 버리겠다”며 “다른 엄마들이 불쌍해요”라는 낸시 레이건의 편지, 프랑스 문학의 자존심이자 당대 최고 지성인 보부아르의 “오세요, 내 사랑. 탐욕스런 두 손으로 저를 안아줘요” 따위 치기가 뚝뚝 묻어나는 편지…. 유치한 개인사의 기록물들.
그 수줍은 역사를 들켜 파장이 커지고 있다. 공직이냐 사랑이냐, 희대의 연서 뉴스가 시든 연꽃 위로 내리는 흙비 소리 같다. 오늘따라 에메랄드빛 하늘이 훤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이 그립다. 오늘만은 문자 메시지를 치우고 유치환처럼 편지를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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