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국 드라마작가 중 가장 인기있기로 소문난 모 작가의 드라마가 그야말로 전국의 안방에 엄청난 인기몰이를 했던 기억이 있다. 하긴 이 드라마의 작가가 대한민국 시청자들을 TV 앞으로 모이게 한 것이 그다지 유난스러운 일이 아닐 만큼 전작의 명성이 워낙 대단했지만, 이번엔 노골적인 제목으로 방영전부터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던 것 같다.
‘내 남자의 여자’ 여섯음절이 주는 제목의 의미는 그리 깊게 생각지 않아도 대충 짐작이 갈 만하다. ‘불륜’ 이라는 결코 가볍지 않은 화두가 이렇게 대중매체를 통해 안방으로 유입되는 순간, 우리는 그야말로 불륜이라는 낯뜨거운 광경을 아무렇지 않게 접하는 나름의 미덕을 갖춰야 했는지도 모르겠다.
요즘 TV를 지켜보다보면 아침을 불륜드라마로 시작해 가족이 모두 모인 밤시간대 더 수위 높은 불륜드라마로 끝이 나는 듯 보인다. 물론, 시청률에 울고 웃는 방송사의 생리상 보다 자극적이고, 새로운 것을 원하는 시청층에 부합하기 위한 노력의 결실이라고는 하지만, 그 결실의 지향점이 사회에서 통용돼야 할 도덕적 상식을 붕괴하는 것이라면 심각한 문제의식을 갖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방송은 국민을 대상으로 해 올바른 가치와 그릇된 이상에 대한 오류를 바로 잡아야 하는 공익적 기능을 막중히 수행해야 하지 않은가.
사실, 불륜이라는 그야말로 쓸만한 소재를 통해 상업적 고리와 단단한 사슬을 엮고자 하는 방송의 부작용은 다른 곳에서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음주운전을 한 연예인이 얼마 안 있어 아무렇지 않게 등장하고, 온갖 비리와 연루된 연예인 역시, 한 방송사의 메인 프로그램을 꿰차고 앉아 시청자들을 마주하고 있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허위학력파문 역시 적잖은 연예인들이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사과방송이나 기자회견을 통해 본인의 의지가 아니었다는 말로 쏟아지는 화살을 잠시 피하고는 이내 브라운관에 다시 슬그머니 나올 참인가보다.
참으로 많은 매체와 방법을 통해 우리는 어린시절 배우고 자란 도덕의 가치를 잃어가고 있다. 도덕불감증에 대한 경고가 어쩌면 급변하는 의식과 사회분위기 속에서 다소 고리타분한 지적이라고 얘기한다면 필자는 분명 시대에 한참 뒤떨어진 사람인지 모르겠다. 연일 이해할 수 없는 사회각계의 사건 사고들이 뉴스를 장식하고, 그저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속수무책 요지부동할 수밖에 없는 우리 사회는 어쩌면 기본을 다시 생각하고,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 가장 우선시되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하는 기로에 서 있는지 모르겠다.
브라운관을 통해 수없이 많은 비도덕적 행위들이 정당화 되듯 쏟아지고 있지만, 그것이 현실과 얼마나 많은 괴리를 갖고 있는지를 깨닫고 각자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깊이 인지해야 한다. 시대가 변하면 사랑의 정의도, 도덕의 척도도 변할 수 있다. 시대마다의 담론도 당대의 의식을 반영해야 함은 인정해야 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누가 봐도 분명 옳지 않은 일의 본질이 그럴수도 있는 상황으로 포장된다면, 우리 사회가 떠안고 가야할 도덕불감의 후유증은 가히 짐작키 어려운 상황에 이를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오늘도 TV를 보며, 그 안의 주인공이 된 듯 살아간다. 더 중요한 것은 네모난 상자 속에서 겨우 한 시간짜리 인생을 사는 내가 아니라, 긴 인생을 올바른 가치로 살아가야 하는 진짜 내가 있음을 결코 잊어선 안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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