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화가 작품세계.다양한 전시장 수준급
문화적 소통 공감대… 국제교류 소중함 느껴
▲ 몽골 전통의상 박물관에서 열린 몽골 전통의상 패션쇼 모습. 몽골의 전통의상은 화려하면서도 몽골민족의 특징을 잘 간직하고 있다. |
세미나 후 화가인 몽골예술대 부만도리 총장이 우리 일행을 데리고 간 첫 번째 방문지는 몽골 전통의상박물관이었다. 이곳에서 부만도리 총장은 우리 일행을 위해 몽골전통의상패션쇼를 연출시켜 주었다. 패션쇼는 단순한 의상전시라기보다 13세기 유라시아대륙의 대제국을 건설했던 몽골의 찬란한 역사가 전통의상 속에서 되살아난 그런 느낌을 받았다.
역시 대제국의 면면은 사라지고 없었으나 그들의 화려한 의상은 과거의 영화를 보여주고 있었다. 또 박물관 쇼윈도 속에 전시된 몽골의 여러 전통의상과 칭기즈칸의 위엄은 비록 박제(剝製)된 모습이지만 보는 이들에게 문화적 충격을 주고도 남았다. 부만도리 총장은 다음으로 일행을 자신의 개인전이 열리는 전시장으로 안내했다.
울란바토르는 몽골의 수도이지만 거리풍경은 아무리 보아도 필자가 1990년 북경아시안게임 때 보았던 중국 연지(延吉) 시가지와 흡사했다. 중심지를 벗어나면 낡고 오래된 건물일색이며 바람이라도 불면 먼지가 흩날리기 일쑤였다. 깨끗하고 밝은 분위기의 우리네 전시장과는 사뭇 다른 거리풍경에 필자는 내심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전시장 안에 들어서면서 이같은 생각이 잘못된 것임을 깨달았다. 전시장 안에는 디자인감각이 뛰어난 탁자와 의자가 놓여있었고 실내에는 가벼운 음료수맥주를 파는 코너도 있었다. 무엇보다 그림을 보고 즐기는 관람객의 태도와 전시장에서 풍겨나오는 분위기가 예술적 느낌 이상으로 다가왔다. 이같은 전시장에서의 분위기는 짧은 여행기간내내 느낄 수 있었는데 몽골의 화가들은 진지하면서도 자신들의 다양한 그림세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국민소득이 500불로 경제적으로는 저개발국가이지만 몽골의 문화수준만큼은 결코 낮지 않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울란바토르 외곽에 있는 몽골예술대교수의 집을 방문했을 때도 같은 느낌을 받았다. 50년대 우리의 판잣집과도 흡사한 곳에 위치한 이 교수의 집에 들어서니 자신이 오랫동안 수집한 몽골의 문화유산들이 잘 정돈된채 12층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박물관에서도 쉽게 볼수 없는 몽골의 과거를 엿볼 수 있는 다양한 유물들을 이곳에서 볼 수 있었다. 필자가 보기에는 채 40도 안돼 보이는 화가이기도 한 이 몽골교수는 몽골의 전통문화를 보존하고 이를 그림으로 담기 위해 이 일을 해오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이런 모습에서 필자는 몽골의 정신문화를 감지하면서 동시에 착잡한 생각도 들었다. 어떤 면에서는 우리보다 더 지신들의 문화를 생각하고 이를 지키려 하고 있으며 그들의 문화수준 또한 우리보다 뒤질게 없다는 생각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 몽골의 옛 생활상을 잘 보여주는 몽골 민속화. |
몽골의 문화예술수준이 우리보다 뒤지지 않은 이면에는 과거 70년동안 옛 소련의 지배를 받았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으리라 본다. 70년간 소련은 몽골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해왔으며 모든 학교에서 거의 무상에 가까운 교육을 실시 했고, 성적이 뛰어난 학생들은 모스크바나 동유럽에 유학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러시아의 예술교육은 지금도 우리의 유학생이 선호할만큼 그 수준이 높다. 이같은 과거 소련의 영향이 몽골의 예술수준을 이끌어 왔다고 본다면 오늘의 몽골 문화예술수준이 결코 다른 나라에 뒤지지 않는다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는 생각이다.
몽골의 문화와 관련해 또하나의 유추(類推)는 역사의 아이러니다. 세계 최고의 기병과 전략, 그리고 무자비한 보복으로 세계를 재패했던 몽골대제국은 라마불교를 도입해 쇠퇴하기 시작했다. 몽골족이 세운 원(元)나라 전성기에 병사대신 많은 라마승을 배출함으로써 병사가 모자라 군대가 와해돼 멸망의 길을 걷게 된다. 몽골인이 라마승을 배출한 이면에는 지식인을 우대하는 당대의 풍토때문이었다고 한다. 이같은 지식인을 우대하는 풍토는 지금도 남아있어 몽골에는 “책은 지식의 보고(寶庫)”라는 말이 있기도 하다. 무력으로 제국을 건설했던 나라가 문(文)을 존중하고 살생대신 구도를 전파하는 라마교를 숭배함으로써 몰락의 길을 걷게되는 역사의 과정이 너무도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몽골, 러시아화가들, 그리고 한국의 우리 일행은 며칠을 함께 지내면서 각나라의 상이한 문화적 이질감을 느끼면서 동시에 동질감도 맛보았다. 비록 언어는 다르지만 문화적 소통을 통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았다. 국제문화교류는 그래서 소중한 체험인 것이다. 우리 일행을 환송하는 자리에서는 조금은 오래된 그룹 아바의 노래가 흘러 나오고 있었는데 이 역시 문화에는 국경이 없다는 것을 확인시켜 준 사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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