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무나 존경했던, 그리고 나를 너무나 아껴주고 사랑해주셨던 베이커선생님이셨는데! 선생님과 작별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그렇게 가셨다는 사실에 표현할 수 없는 극심한 슬픔과 야속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당장 다음날 아침, 한국에서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베이커 선생님의 장례식에 이렇게라도 가지 않으면 정말이지 평생을 두고 후회할 것 같았다.
베이커 선생님과 처음 레슨이 있던 때를 기억한다. 플룻계의 살아있는 전설을 만나게 된다는 기대와 두려움에 전날 잠을 이루지 못했다. 베이커 선생님은 사진으로 접했을 때보다도 훨씬 더 기품이 있는 인자한 여든셋의 할아버지의 모습을 하고 계셨다. 내 연주를 들으시더니 "잠깐만, 네 정체가 도대체 누구냐? 커다란 센세이션이다. 너는 이다음에 세계적인 스타가 될 것이다." 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고, 그렇게 베이커 선생님과의 수업이 시작됐다.
베이커 선생님은 특별한 레슨 철학을 가지고 계셨다. 무엇이든지 내가 해석하는 방식을 존중해주시며, 네 스스로가 느끼는 해석이 가장 옳은 음악이라고 하셨다. 음악인이 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잘 알아야 하고, 그것을 토대로 결국 가장 좋은 선생님은 결국 네 자신이라고 가르치시며 음악과 나, 그 사이에서의 진정한 자유를 허락해주셨다.
매주 목요일이면 아침식사에 초대해주셨다. 잠 많던 십대에 아침 7시까지 나간다는 것이 부담이 됐지만, 베이커 교수님과 친구처럼 이런저런 얘기도 나눌 수 있는 시간이 내게는 또 다른 기쁨이었다. 때로는 뉴욕 근교에 있는 선생님 댁에 초대해주시기도 하면서, 인생 스승님으로서, 어떻게 보면 친할아버지처럼 나를 진심으로 아껴주셨다.
내 연주에 대해 끊임없이 칭찬해주시며 내 안에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려고 많이 노력하셨던 것 같다. 레슨 다음날이면 어제 네 연주가 너무 좋아서 아직도 생각난다고 음성 메세지를 남겨주시기도 하셨고, 일찍 주무시는 분이셨는데도 내 연주가 있는 날이면 사모님과 함께 반드시 오셔서 나보다도 더 흥분을 하시며 좋아하시던 기억이 난다.
요즘도 문득 베이커 선생님 생각에 가슴 한 켠이 아련하게 느껴지는 때가 많다. 그와 공부했던 4년 동안에 서서히 내 음악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되었고, 그 자신감이 나만의 음악, 나만의 연주 스타일, 그리고 나만의 색깔을 찾는 데에 큰 몫을 하게된 것 같다. 내가 그 전설적인 플루티스트의 마지막 제자라는 사실에 많은 사명감과 책임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만큼 더 열심히 해서, 그가 만약 지금의 나를 보고 있다고 해도 변함없이 뿌듯함을 느끼게 해 드릴 수 있는 제자가 되는 것이 나의 소박한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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