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책읽기]한 여인의 처절한 ‘인생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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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책읽기]한 여인의 처절한 ‘인생 드라마’

한국어판 출간전 전세계 동시출간 현재 소설부문 3위 최고주가 올려

  • 승인 2007-09-04 00:00
  • 신문게재 2007-09-05 9면
  • 김필수 대훈서적 기획실장김필수 대훈서적 기획실장
北 전통설화 현대로 새롭게 부활
힘든 고난이 닥쳐도 희망 안버려


사람은 다 같다. 한번 태어나 살고 죽는 건 다 같다.

그런데 왜 내 잘못이 아닌데, 내가 선택한 게 아닌데, 그런 부모를 만나고, 그런 나라에 살아야 되고, 왜 여자인 것만으로도 원죄인 인도에서 태어났는가. 왜 흑인으로 태어나 노예 생활을 했는가. 왜 부모 공양하고 제사를 모셔야하는 한국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는가. 따지기 시작하면 우리 인생은 불공평하고 억울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인간의 가장 큰 장점은 주어진 조건과 환경을 받아들이고 적응하는데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가능하면 진보시키는 능력이 있다. 그런 능력을 보여주는 처절한 소설 <바리데기> 요즘처럼 TV드라마를 통해 신데렐라와 멋진 왕자가 부각되는 현상과는 정반대로 한 여인의 처절한 인생 드라마 <바리데기>는 출간 초기부터 많은 이목을 집중시켰고, 한국어판 출간 전에 영어ㆍ불어ㆍ독어ㆍ일어권으로 번역출간이 결정되어 전세계가 읽는 소설로 평가받으면서 현재 소설부문 3위로 최고 주가를 올리는 소설이다.

이 책의 저자 황석영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듯이 1943년 12월 14일 만주 장춘에서 출생하고, 8`15광복 후 귀국, 동국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였다. 일제 때 말로 인텔리였던 황석영의 부모님은 북에서 월남해 내려와 영등포의 공장 지대에 정착을 했다고 한다. 한국 전쟁이 휩쓸고 지나간 뒤에 영등포 시장에 나가면 피난 보따리와 개인의 서재에서 쏟아져 나온 책을 책꽂이째로 노점에 내놓고 책을 빌려주는 대여점이 많이 생겼는데, 작가는 초등학교 일학년부터 그런 책들을 빌려다 보았다. 그런 이유로 책과 가까워지면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밝히고 있다.

<무기의 그늘>이후 잘 나가는 소설가로 이름을 알리지만, 1989년 방북하여 귀국하지 못하고 베를린예술원 초청 작가로 독일에 체류했으며 1993년 귀국하여 방북사건으로 7년형 선고받았다. 1998년 사면 석방된 이후 『오래된 정원』,『손님』을 발표하면서 베스트 작가로서 지금도 글을 써야만 하는 절박한 상황을 본인이 만들어가는(?) 이 시대 최고의 작가이다.

북한의 전통설화에서 ‘바리데기’는 오귀대왕의 일곱째 공주로 태어나 버려진다. 병든 부모가 약이 필요하게 되었을 때 나머지 딸들은 약을 구해올 것을 거절하자 바리데기는 저세상까지 가 온갖 고생 끝에 서천의 영약(생명수)을 구해 죽은 부모를 살린다. 이후 바리데기는 사자(死者)를 저승으로 인도하는 오구신으로서 무당의 원형으로 받들어지기도 한다.

소설『바리데기』에서 바리는 현대를 배경으로 완전히 새롭게 부활한다. 주인공은 북한 청진에서 지방 관료의 일곱 딸 중 막내로 태어난다. 아들을 간절히 원했지만 딸이 나오자 부모는 핏덩어리를 숲속에 버리게 된다. 이를 불쌍히 여긴 할머니가 애타게 산 속을 찾아 헤매지만 찾지 못하고 체념한 상태로 집에 돌아와 보니, 자신이 기르던 풍산개 ‘흰둥이’가 개집에다가 아기를 물어다 놓은 것을 발견한다. 그후부터 할머니 손에 자란 그녀는 그렇게 버린 아이라고 해서 ‘바리’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고, 심하게 앓고 난 뒤부터 영혼, 귀신, 짐승, 벙어리 등과도 소통하는 능력을 지니게 된다.

북한에서 태어났지만, ‘바리’는 운명적으로 중국에서 런던으로 움직인다. 소련이 무너지고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면서 북한의 정치경제는 급속히 나빠지고 기근과 홍수로 죽는 이들이 늘어난다. 중국과 무역업을 하던 외삼촌은 결손이 나자 몰래 탈북해 남한으로 들어갔다는 소문이 들린다. 외삼촌 때문에 아버지는 모진 고초를 당하고, 어머니와 언니들도 다른 지역으로 강제 이주되면서 식구들은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바리는 조선족 ‘소룡 아저씨’의 도움으로 할머니, ‘현이’ 언니, ‘칠성이’(흰둥이 새끼로 영혼들을 만나는 데 안내자 역할을 하는 개)와 두만강을 건넌 뒤 아버지와 재회한다. 현이가 얼어 죽고 가족을 찾으러 떠난 아버지는 연락이 두절된 상황에서 할머니까지 죽게 된다. 바리 역시 북으로 들어가 식구들을 찾아보려 하지만, 굶어 죽었거나 죽어가는 사람, 귀신들만을 목격하고 산불로 칠성이마저 잃고서 혼자가 된다.

이후 바리는 연길의 발 마싸지 업소에 취직해 안마를 배운다. 바리는 얼굴과 발만 봐도 그 사람의 삶아온 이력이나 아픈 곳을 꿰뚫는 신통력을 발휘해서 치료한다. 동료 ‘샹’ 부부가 따롄(大蓮)에 안마업소를 개업해 동행하지만, 결국 빚 때문에 샹과 함께 팔려 밀항선을 타게 된다. 주인공은 한 달 이상을 밀항선에 갇혀 삶과 죽음이 교차하고, 인신매매단의 매질과 성폭력, 굶주림이 난무하는 처참한 상황을 겪는다.

생지옥을 겪고 런던에 도착한 뒤 샹은 성매매 업소에 팔려가고, 바리는 식당일을 하다가 발 마싸지 업소에 취직한다. 빈민가 연립에서 살게 된 바리는 건물을 관리하는 파키스탄인이자 무슬림인 ‘압둘’ 할아버지와 그의 손자 ‘알리’를 만나 결혼까지 하게 된다. 하지만, 행복은 잠깐뿐이었다. ‘바리’의 남편 ‘알리’는 다시 전쟁터로 나가 버린후 소식이 없었고, ‘바리’는 남편이 전쟁터에서 순직하는 장면을 직감으로 알았지만, ‘알리’를 찾기 위해 ‘생명수’라는 희망을 놓지 않는다.

바리와 같은 사람들은 ‘공주’란 호칭을 붙일 수 있는 극소수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 주위에서 언제라도 볼 수 있고 함께 살아가는 다수의 사람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데기’처럼 살아가지만 그들은 결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마치 바리가 생사를 알 수 없는 남편 알리를 기다리는 것처럼… 이 세계를 이끌어가는 것은 몇몇 소수의 특출난 사람들이 아니라 온 세상에 퍼져있는, 자신의 삶의 터전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데기’같은 사람들이다. 그들이야말로 이 세상을 유지하고 하나로 만들어 주는 장본인이다.

우리 모두 ‘바리데기’와 같은 삶을 살면서도 서로 위안을 주는 그런 세상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이 진정한 삶의 의미임을 작가는 이 소설 한 편으로 독자들에게 화두를 던지는 느낌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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