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튠즈 세대의 서스펜스 스릴러
10대의 유쾌한 감성에 묻힌 공포감
집에선 컴퓨터 앞에서 떠날 줄 모르고 나갈 땐 이어폰을 귀에 꽂고 나서는 10대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도 권할 만하다. 특히 게임만 하고 장난만 친다고 “커서 뭐가 되려고 저러는지…”하고 걱정하는 부모라면 강추다. 캠코더 휴대폰 등의 기구들을 마치 몸의 일부처럼 자유자재로 다루고, 살인범에 대항하는 무기로 테크놀로지를 활용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생각이 달라질 지도 모른다.
‘디스터비아’는 이웃집을 훔쳐보던 10대가 연쇄살인범을 발견하고 살인범에게 쫓기는 스릴러. 그러나 영화를 이끄는 동력은 긴장감이 아니라 무청처럼 푸르고 싱싱한 청춘의 에너지다.
D. J 카루소 감독은 10대의 생활, 문화, 감성을 영화 속으로 깊숙하게 끌어들인다.
집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게 10들에겐 벌도 아니다. 케이블 TV, 게임기, 아이팟이 있는 데 심심할 이유도 없다. 그것들을 손에서 빼앗기고 나서야 비로소 이웃을 엿볼 생각이 드는 거다.
망원경으로 엿보는 건 케케묵은 고전. 고성능 망원경에 휴대폰과 홈 비디오 감시 시스템을 동원해 할리우드의 ‘리얼리티 쇼’처럼 생중계하는 게 요즘 수준.
훔쳐보기도 부끄럽거나 자신만이 누리는 비밀이 아니다. 친구들과 함께 보고 여자 친구도 끌어들여 함께 본다. 그저 즐거운 놀이일 뿐. 사랑도 훔쳐보면서 고백한다. 아슬아슬한 이들의 훔쳐보기 놀이는 긴장감이란 눈을 씻고 봐도 없다.
10대들의 감성을 따라 직선으로 달려가는 영화는 경쾌하고 유쾌하다. 어찌 보면 말썽꾸러기고 장난기가 절반인 주인공 케일과 친구 로니의 우정도 고교생 특유의 건강함으로 생생하다. 그러다보니 정작 스릴러의 몰골은 앙상해져 버렸다. 엿보이는 자가 보는 자의 행동을 제어할 만큼 ‘역 엿보기’를 감행하고 엿보는 자를 찾아오는 순간의 원초적인 섬뜩함은 살아 있다. 하지만 주인공 못지않게 악당에게도 비중이 주어져야 장르적 재미가 사는데 이 살인범 아저씨 아무리 봐도 무섭지 않다.
로니를 인상적으로 연기한 한국계 배우 아론 유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한국 관객들에겐 보너스.
영화를 보고 집에 돌아와선 창의 커튼을 모두 닫았다. 내 은밀한 사생활을 누군가 이웃이 몰래 지켜보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영화 제목처럼 ‘평온하지만 언제든지 누구에 의해서 방해받을 수 있는 곳’이 우리가 살고 있는 곳 아닌가.
영화 시작에 나오는 대사처럼, “그들은 우리가 보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지”일 수도 있고. ‘디스터비아’는 ‘방해하다’는 뜻의 ‘디스터브(disurb)’와 현상 또는 공간을 뜻하는 ‘ia’를 합쳐서 만든 조어. 평화로운 기운을 방해하는 곳 또는 현상이란 뜻이다. 12세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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