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세평]흠을 공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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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세평]흠을 공시한다

  • 승인 2007-08-29 00:00
  • 신문게재 2007-08-30 20면
  • 김중겸 건양대 석좌교수김중겸 건양대 석좌교수
아파트 주차장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말라 한다. 반상회 다녀 올 때마다의 집사람 강조사항이다. 차 옆으로 가면서 한 대 갖다 대고 불붙인다. 수 백 번 얘기해도 통하지 않는다는 소리가 등 뒤에서 들린다. 못 들은 척 그냥 내 뿜는 연벽(煙癖)이다.

승강기를 탄다. 문 저절로 닫히는 몇 초를 기다리지 못한다. 버튼을 누르고 만다. 닫히는 부분만 번들번들 하거나 닳고 닳은 걸 보면서 어디 나만 그러냐고 자위하는 조벽(燥癖)이다.

약속시간에는 한 이 삼십분 먼저 도착한다. 상대방이 나를 발견하고는 허겁지겁 뛰어 온다. 죄송하다는 말을 연발한다. 딱히 무슨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먼저 가서 앉아 있어야 편안해지는 비벽(備癖)이다.

해외를 나간다. 공항에 두 시간 플러스 한 시간 전에 당도한다는 목표 아래 움직인다. 대개 아침 비행기니까 새벽부터 서두르는 급벽(急癖)이다. 동행자는 허겁지겁 허둥지둥 따른다. 미처 담지 못 한 필수품을 빠트려서 현장에서 곤욕을 치른다.

컴퓨터를 두드리면서 전화를 받는다. 전화를 받으면서 비서를 부른다. 사람 앞에 세워 놓고 글 쓰면서 이런저런 지시를 한다. 혹자는 동시다중 업무처리라는 칭송의 소리를 늘어놓곤 한다.

과연 그런가. 천만의 말씀이다. 어느 하나인들 진중하랴. 그래서인가. 아는 사람은 내 목소리만 들어도 눈치 챈다. 지금 딴 짓 하는 걸 안다. 한 번에 한 가지만 하라는 핀잔도 듣는다. 고치지 못 한다. 되질 않는다. 이것저것 함께 하기를 무척 좋아 한다. 관심 분산의 가볍기 그지없는 경벽(輕癖)이다.

남의 얘기를 끝까지 듣지를 못 한다. 생각이 다르면 중간에 끊는다. 내 주장을 내뱉고 만다. 잘못을 금방 깨닫는다. 그래도 내친 김에 해댄다. 말을 훔치는 도벽(盜癖)이 아니고 무엇이랴. 이번에는 그러지 않겠노라고 다짐 하건만 잘 되지 않는다.

불같은 성격은 또 어떤가. 맘에 들지 않으면 버럭 화를 낸다. 원칙에 어긋난다 싶으면 가차 없이 혼을 내는 노벽(怒癖)이다.

수업시간에 떠들면 일어서라 한다. 내 강의 듣지 말라 일갈한다. 젊은이에게 이러니 나이 든 상대에게는 오죽 하랴. 저녁약속을 하지 않으려 한다. 술이 따르기 때문이다. 적정 수준에서 스톱하고 집으로 가면 얼마나 좋은 가. 너 자폭 나 자폭으로 간다. 어처구니없는 폭벽(爆癖)이 자심하다.

어디 이뿐이랴. 커피 마시다가 와이셔츠에 흘린다. 양복에는 글자 지우는 화이트를 묻힌다. 우산은 늘 식당에 놓고 나온다. 눈은 윙크로 오해받기 십상일 정도로 깜박인다. 너무 많다. 창피하다.

그러고 보니 연벽(戀癖)도 있다. 사내랍시고 여자 보면 눈길 간다. 엉뚱한 행동에 망신당한다. 체면 구긴다. 교언영색에 솔깃해 한다. 정신 차리자 하지만 본심이야 어디. 이게 다 언감생심 부질없는 욕심 탓이다.

그래도 이제껏 버텨냈다. 바탕에 한 둘의 장점이 있어서다. 향기 하나로 악취 열을 덮고 살았다. 사람은 좋은 점과 나쁜 점을 공유한다. 내 눈에 보이는 강점보다 남의 눈에 띄는 약점이 훨씬 많다.

정치판에서 듣기 흉한 중상모략이 판친다. 상대 치켜세우면 어디 덧나나. 서로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다. 그럴 바에야 아예 후보자가 범죄경력과 흠을 미리 공시하도록 의무화하면 어떨까? 망상이다. 그나저나 축제 같은 선거판이었으면 좋겠다. 능력 이전에 품성을 겨루었으면 한다. 품격 있어야 역량도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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