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에 싸서 먹입니다. 그건 사기다.
…마오쩌둥(毛澤東)은 고양이에게 어떻게 후추를 먹였을까?
광복 이후인 52년 전에 태어난 동사무소는 일제와의 관련 혐의에선 한발 비껴나지만 면사무소가 모델인 것만은 완전히 부정할 수 없다. 시대 추이에 따라 그동안 단계적인 동사무소 기능 전환 작업이 진척을 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어느 것도 9월 1일부터 전국 2166개 ‘동사무소’ 간판을 ‘동주민센터’로 갈아치울 사유에는 미달이다.
그러잖아도 동사무소 통폐합 문제로 술렁이는 데다 동 이름이 빠진 새 주소 시행을 앞두고 있다. 생돈 들여 동사무소 현판과 도로표지판을 갈고 동장이 주민센터장이 되는 건 부차적일 수 있겠다. 그보다 동사무소란 이름은 반가운 고향갈매기 같은 고유명사가 거지반 되어 있었다. 마치 이름이 또 다른 ‘나’를 이룬 것처럼.
손님 눈길을 확 사로잡아야 하는 ‘간판학’상으로도 동사무소가 좋다. 행정의 초점이 복지와 주민 중심으로 바뀌어 주민센터로 개명하고 기존 주민자치센터를 주민사랑방 등으로 역시 개명한다니 설득력은 좀 모자란다. 바꾼다는 걸 전제로 한 설문과 자문의 정당성이 의심스럽다. 아직은 동사무소 간판의 의미가 역사 속으로 사라질 만큼 퇴색하지 않았으며 무슨 왜곡된 문화자본처럼 청산 대상도 아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옛말이 있다. 이름이나 간판도 그러하다. 덜 세련된 이름이 싫거나 운명을 거역하기 힘들거나 과거를 감추고 싶을 때 개명의 유혹에 빠진다. 골백번 간판을 고쳐 달아도 도루묵인 이름이 있는가 하면 겨우 정이 막 들어가는 이름이 동사무소다. 파출소가 치안센터가 되어 마음에서 멀어졌듯, 동사무소가 주민센터가 되어 주민에게서 멀어질까 두렵다.
고양이에게 후추를 먹일 때, 입을 억지로 벌리지도 말고, 고기에 몰래 싸서 먹이지도 말며, 꽁지를 들고 항문에다 후추를 뿌려서 놓아두면 자의에 따라 목적을 달성할 게 아닌가. 당치도 않은 마오쩌둥의 노선이 불쑥 연상된다.
그냥 동사무소 이름은 두고 통합 서비스 제공기관의 목적을 구현할 방도를 찾는 편이 낫다. 자신조차 적응 못하는 이름이 있는데, ‘동주민센터’가 이 경우이기 십상이다. 공공기관명에 마뜩찮게 ‘센터’를 쓴 것이 만일이라도 우리 마음의 식민주의가 아니길 바란다. 개명은 이름만이 아니라, 팔자를 고친다는 의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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