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부자되기 조상지혜 담아
이 책의 저자 전봉관은 1971년 부산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했다. 현재 한국과학기술원(KAIST) 인문사회과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자는 1930년대 한국의 금광 열풍을 다룬 ‘황금광시대’(2005), 근대 조선의 살인 사건과 스캔들을 통해 식민의 아픔과 근대의 혼돈을 그려낸 ‘경성기담’(2006) 등을 펴냈고, 현재 월간 ‘신동아’에 ‘옛날 잡지를 보러 가다’를 연재하고 있다.
하지만, 혹시라도 일확천금을 거둘 비책이라도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우선 그런 마음 접고 여유있게 보셔야 한다. 이 책은 일제 강점기 시절 조선 시대를 풍미했던 돈 많이 번 우리 조상들의 후일담을 모은 내용이다. 당시 함경북도 토지왕 김기덕을 비롯해 미두왕 반복창의 얘기, 금광왕 이종만, 여걸 최송설당에 이르기까지 10명의 재미있는 돈 버는 얘기가 나온다.
우리나라 최초의 부동산 투기를 시작한 김기덕의 이야기를 시작하자면 이렇다.
김기덕은 1892년 함경북도 부령군의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18살에 혈혈단신으로 청진에 가서 일본인 상인 이와타상점에 잔심부름꾼으로 들어간다. 김기덕은 당시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틈만 나면 일본어를 공부했고, 이와타는 명석하고 성실한 김기덕을 남달리 아꼈다.
강제합방 직후 청진에 항만 공사가 시작되면서 시공을 맡은 일본 상선회사는 통역을 도와줄 청년을 구했고, 김기덕은 사장의 추천을 받아 임시직 통역으로 들어가 측량보조기사가 되고 나중에는 보조까지 떼어버린다. 일본어에도 유창했던 김기덕은 일본인들의 총애를 받으며 일본까지 따라가 일본의 상술을 2년간 배웠다. 다시 청진으로 돌아와 공동무역상사를 차려 조선의 곡물과 목재를 수출하고, 연해주의 해산물과 잡화를 수입했다.
그러다가 사업의 실패 끝에 마지막으로 선택한 것이 부동산 투기였다. 그는 자신이 가진 20만원짜리 건물 하나를 담보로 당시 50만원을 대출 받았는데, 그 당시 50만원이면 지금의 자산가치로 500억원이나 되는 큰 돈이었다. 당시 일본은 대륙 진출을 위해 함경북도 지역에 대규모 항구가 필요했고, 청진, 나진, 웅기 세 곳이 후보지로 예정돼 있었다.
김기덕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세 도시를 꼼꼼히 살폈고, 당시 많은 사람들이 청진으로 확정될 것이라 판단하고 있을 때 혼자만 나진 일대의 땅을 대출 받은 돈으로 사 들이기 시작한다. 결국 김기덕의 판단대로 나진이 항구로 결정되었고, 부동산 폭등으로 투자한 돈 5만원의 1000배 이익을 챙겼다고 한다. 당시 그가 고용했던 종업원만 해도 1500명에 달했다고 한다.
김기덕은 왕성하게 사업을 확장해 조선 제일의 부호에서 아시아 제일의 부호를 꿈꾸었지만 안타깝게도 국토가 남북으로 분단되면서 만주와 함경북도 일대의 사업체와 부동산을 모두 잃게 된다. 그는 남은 재산을 추슬러 서울에 고려흥업주식회사를 차리고, 중석무역으로 재기를 노렸지만 큰 이익을 보지 못했다고 한다. 조선 제일의 부호에서 평범한 부자로 전락한 김기덕은 62세에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이 책의 저자는 돈이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돈을 비판하고 부정하는 것과 돈을 욕망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고 말한다. 누구든 한편으로 돈을 저주하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돈을 욕망하는 것, 이것이 돈의 이중성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통해 우리시대의 부자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아름다운 부자가 되고, 추한 부자가 된다고 말한다. 이 책에는 재미보다 아름다운 부자가 되기 위한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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