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찬호 국가기록원 보존복원센터 공업연구사 |
그는 종이박사다. 원래부터 우리의 옛것을 보존하는 것에 관심이 많아 충남대 대학원에서 항균지를 공부한데 이어 섬유 개질(改質)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영인본에 관심이 많아 부전공으로 인쇄를 공부하기도 했다. 처음엔 기계연구원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장비보존 업무를 보았지만 2002년11월 국가기록원에 종이 전문가로 인연을 맺게 됐다. 이 후 5년 가까이 한 업무에 매달리다 보니 종이 기록물 `외과의사`로 통한다. 제대로 보존하지 않았거나 세월이 흘러 누더기 상태로 들어온 종이 기록물을 진단하고 상태에 걸맞는 처방을 내리기 때문이다.
그는 종이 기록물에 관한 한 청내 최고 전문가로 꼽힌다. 조선왕조실록, 판결문 등 역사적으로 중요한 기록물을 원본 상태로 전시할 수는 없기 때문에 디지털 인쇄기법을 이용해 전시할 수 있는 복제본 제작시스템을 2년 가까이 연구한 끝에 개발했다.
소장기록물 중 해방이후 생산된 문서의 80% 이상이 보존성이 취약한 산성용지여서 탈산(脫酸)처리 장비의 성능을 개선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 결과 장비비 50%, 연간 처리비용 12%를 절감하는데 기여했다. 조선총독부 문서, 국무회의록 등 중요기록물이 빛이나 먼지 등 `열화(劣化: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약화되는 현상)` 요인으로 훼손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국내 최초로 맞춤식 보존상자를 설계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해부터 유네스코를 통한 아시아 기록유산 보존 지원사업에도 앞장서고 있다. 지난해 몽골 국립기록보존소의 직원들에게 기록물의 보존 및 복원 처리방법을 교육한데 이어 올해 7월에는 스리랑카를 방문, 기록문화재 관계자들에게 한국의 기록보존 비법을 과시했다.
그는 "훼손된 책을 본드로 붙여 놓은 걸 보고 깜짝 놀랐다"며 "풀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고, 사소해 보이는 기록물도 정성을 다하면 세월이 흘러 아주 중요한 사료가 된다는 점을 일깨웠던 점이 보람으로 남는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도 종이사랑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며 "기회가 주어지면 한지의 우수성을 외국에 전파하고 싶다"는 소망을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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