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일 동(動). 동영상이라고 하면 어떻소?
(이거 좀 야하니 야동이라 부르리까?)
―대꾸하는 글이니 댓글이 어떻습니까?
행위 장면을 그린 연속동작 삽화를 촤르르 넘기는 사내의 이죽거림은 어떤가.
―움직일 동(動). 동영상이라고 하면 어떻소?
이 동영상 관련 대사는 최초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인정받는 뤼미에르 형제와, ‘먼동이 틀 때`를 영화로 만든 기자이며 작가인 심훈과, 식민지시대와 버무려진 슬픈 한국영화 등등 여럿을 동시에 생각하게 한다.
소급해보면 우리 민속인 만석중놀이도 동영상이었다. 흰 보를 쳐놓고 불빛을 쪼이는 이 그림자극은 한국적 영화의 효시로도 볼 수 있겠다. 요즘 단절된 이 극을 부활하자는 움직임이 이는데, 이런 원초적인 영화를 만든 나라여서 야한 동영상이 더 넘쳐나는지도 모를 일이다. ‘야동` 관리란 수백만 인파가 드나드는 대문에서 개미 찾기라는 포털 관리자의 호소는 엄살 아니었다.
영화 스크린은 남의 안방을 훔쳐보는 은밀한 창이기도 하다. 야한 영화는 하물며 어떻겠는가. 성적인 것은 양성화가 음성화보다 낫다는 주장이 심심찮게 나온다. 얼마 전 야동을 본 대학생이 성폭행하려다 살인에 이른 일이 대전에서 있었지만, 호기심과 욕망을 제어하거나 단련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
화려하고 요염하고 천박한 것은 수시로 경계를 넘나들기 때문이다. 비키니와 미니스커트도 본래 외설이었다. 헤어 노출을 기준 삼는 빅토리아 왕조 이래의 외설 규정도 때가 되면 바뀔 것이다.
또한 ‘야하다`는 것은 쇳덩이 같은 사내 마음이 녹아 내린다 해서 대장간의 ‘야(冶)`와 관계가 있다. ‘뒷담`이지만 하찮은 영화 속 동영상이나 갖고 비약을 거듭했던 데는 그럴 만한 비밀이 작용했다. 공원에서의 집 친구 운동 모습을 담은 사진 여러 컷을 영사해 보는 이를 제법 즐겁게 한 적이 있다. 이제 보니 그 슬라이드쇼가 꼭 ‘음란서생`구식 동영상 원리와 일치한다.
―신묘하지 않소? 좀 야하니 야동이라 부르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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