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문화를 어떤 이는 중국이나 일본문화와 비교하여 물동이를 이고 오는 청순한 아낙 같다고 하여, 화려하게 치장한 중국이나 일본 여인과는 다른 멋으로 구분한다. 따지고 보면 한국의 문화 저변 곳곳에는 자연과의 은밀한 조화와 거스림 없는 타협들이 수없이 발견된다.
우리의 시골 어디를 가나 흔한 것이 감나무이고 그래서 우리는 감을 가장 흔한 과일로 먹고 자랐다. 추석 무렵이면 아직 잘 익지 않은 땡감을 따다가 동이에 넣어 단감을 만들어 먹었고, 나무에서 홍시가 되면 집 주위를 맴도는 날짐승들과도 나누어 먹었다. 어디 그뿐인가. 홍시가 되기 전에 미리 따서 곶감을 만들기도 하고 아예 고추장에 박아 장아찌를 만들어 입맛을 돋우는 반찬을 삼기도 했다. 요즘 같이 군것질꺼리가 많지 않던 옛 시절, 곶감이 얼마나 좋았으면 호랑이가 온다 해도 그치지 않던 어린아이의 울음이 뚝 그쳤을 것인가.
정말 단감과 곶감, 그리고 홍시와 장아찌만 보더라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영특하고 다양하게 자연과 그 산물들을 우리 것으로 필요에 맞게 잘 이용했던 민족이었음을 알 수가 있다. 어디 그 뿐인가. 벼농사와 함께 남겨진 짚으로 우리 조상들은 이엉을 말고 멍석을 짜고, 줄다리기 줄을 만들고, 그네를 만들어 타고, 농사거름을 하고, 그러고는 연료로까지 이용하였다. 우리 조상들의 이런 환경 친화적이고 자연생태적인 지혜와 경험들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
새마을 사업이 시작되기 전에 모든 마을에는 미나리꽝이 있었다. 나의 기억으로 이들 미나리꽝은 동네 어귀에 위치하여 냄새와 함께 벌레들의 서식지로 일종의 혐오 대상이기도 하였다. 어쩌다 어머니가 미나리라도 뜯어 오라는 심부름을 시키면 그것처럼 하기 싫은 일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시궁창에 들어가도 것도 싫었고, 들어 갔다하면 거머리에게 어김없이 기한 피를 헌납하여야 했으니까. 그런데 그 미나리꽝이 일종의 정화조와 같은 시설이었다는 사실을 안 것은 아주 최근에서이다. 물론 애석하게도 우리나라 거의 모든 마을에서 미나리꽝을 없애고 난 뒤였다.
자연은 거짓말을 하지 않고, 인간이 괴롭히지만 않으면 항상 공존할 준비가 되어 있다. 환경전문가들의 말을 빌리면, 약간의 경사도가 있어서 물이 졸졸 흐르기만 한다면 약 100여 미터 정도의 거리를 흐르는 동안 자연 정화가 이루어진단다. 내가 아는 한 2-300년이 된 우리의 전통마을들은 대개 평지가 아닌 2부나 3부 능선에 기대어 마을을 형성하고, 그래서 경사도를 가진 도랑에서는 항상 물이 졸졸 흘렀던 것 같다. 그래서였는지 당시의 냇가는 물이 맑아 항상 놀이터가 되었었다.
그러나 새마을 사업과 경지정리가 이루어지면서 마을은 점차 들판으로 전진하고, 냄새나는 미나리꽝도 가장 먼저 없어졌으며, 도랑도 직강 공사로 인하여 물이 넘칠 때와 마를 때가 구분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거의 폐수가 된 냇물을 멀리하는 시대가 되었다. 아마 이는 아주 당연한 결과였고, 미쳐 조상들의 지혜를 깨닫지 못한 벌이라고도 생각된다. 누가, 언제 미나리꽝을 만들면 환경 오염이 적어질 것이라고 했을까? 지적 소유권을 등록하지 않은 것이 문제라고 또 속없는 말을 할 후손들이 있을 법하지만, 정말 이제부터라도 이런 식의 덜 떨어진 후손들은 되지 않았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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