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문관에서 꽃이 되다 (최만희 저 /운주사/1만원) |
32살에 출가를 하려 했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시청 공무원으로, 시인으로 살아온 최만희 시인이 또다시 출가를 결심했다.
그가 세속의 인연을 버리고 다시 출속(出俗)을 결심하게 된 것은 자신이 최근 묶어낸 탄하(呑河) 삼성선사(三省禪師) 자서전 `무문관에서 꽃이 되다`(운주사/1만원)의 영향을 배제할 수 없다.
불심이 깊은 시인 최만희는 "종단의 권력과 구습에 철저하게 대항하고 불구의 몸에도 초인적인 구도 행을 했던 삼성선사의 일대기를 지난 3년간 정리, 최근 책을 냈다. 책을 엮으면서 선사의 선적(禪的)과 오도한 정신, 숭고함으로 가슴에 경련을 일으키기도 했다"며 그동안 생각만 해 오던 출가를 결심하게 된 배경을 이같이 말했다.
부인과 자녀의 만류도 이제는 한풀 겪었다. 최만희 시인은 "`양심이 부처님의 마음(良心卽佛性)`라는 깨달음을 실천하고 종단과 사회를 향해 거침없이 바른 소리를 했던 삼성선사를 통해 전통불교와 선사상의 진수를 맛 볼 수 있었다"며 "삼성선사의 뜻을 잇겠다"는 의지도 덧붙였다. 최만희 시인이 출가를 결심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친 삼성선사가 궁금했다.
삼성 스님은 1941년 충북 진천에서 태어나 58년 법주사로 출가하고 68년 수계했다. 1965년 송광사에 스님들이 돼지머리를 놓고 고사를 지내는 것을 보고 참회를 요구했다가 살인미수협의로 전과 1범, 불국사 스님들이 가짜 사리병으로 혹세무민한 것에 격분해 `별`을 하나 더 달았다. 반신불구의 장애인이지만 깡패대장으로 수배도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삼성선사는 행동하는 양심으로 살아왔다.
책의 저자인 최만희씨는 "삼성은 어느 날 공주전화 부스 아래 반짝이는 동전을 보고 주웠는데 막상 줍고 보니 병 뚜껑이었다. 그 순간 `스님의 돈에 눈이 멀었구나?` 하며 물욕을 조롱하는 것 같았다고 했다"며 이후 53일간 단식참회를 하던 준 불구의 장애인이 됐다.
100만행, 100일 묵언, 두문불출 3년결사를 비롯, 장애인으로 감당하기 힘든 참회 150만 배, 행선운동 2100만 번 등을 초인적인 구도생활과 거침없는 사자후로 괴각승으로 불렸다.
최만희 시인은 " 전과 7범 이며, 잠시 속세에서 가정을 꾸리기도 했던 삼성선사가 2004년 아무것도 남김없이 좌탈열반 했지만 현실과 타협 않고 한 평생 불가의 잘못된 점을 꼬집었던 그의 정신은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최만희 시인은 정림동장, 도마 1·2동장, 서구보건소 과장을 마지막으로 올해 공직에서 퇴임했으며, 월간 `한국시`로 등단, 대전시인협회와 호서문학 동인으로 활동하며 `칠갑산` 등의 시집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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