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눈물겨운…영화같은 사실

  • 문화
  • 영화/비디오

[영화]눈물겨운…영화같은 사실

80년 5월 18일… 그날의 기억 ■화려한 휴가(감독: 김지훈, 출연:김상경.이요원.이준기)

  • 승인 2007-07-27 00:00
  • 신문게재 2007-07-28 9면
  • 안순택 편집위원안순택 편집위원
영화로 그려낸 광주민주화운동 열흘의 기록
그때 그 사건보다 그날 그 사람들의 이야기
“기억해 달라” 는 절박한 호소 눈물 자아내


# 하나.
계엄군이 도청을 떠나기로 한 시각. 도청 앞에 모여든 시민들은 70년대 히트곡 ‘잘 가세요`를 승리의 축가처럼 떠들썩하게 부른다. “잘 있어요. 잘 있어요. 그 한마디였었네. 잘 가세요. 잘 가세요. 인사만 했었네….” 애국가가 울리고 노래를 멈추고 부동자세를 취하는 시민들. 그 순간 날카로운 파열음이 공기를 찢고 그들의 가슴으로 총탄이 날아든다. 대한민국 군인들이 애국가를 배경음악으로 시민들을 향해 총을 난사하기 시작한다. 금남로는 순식간에 지옥으로 돌변한다.

# 둘
광주 교외의 한적한 도로. 시외버스가 멈추고 급히 내린 시민군이 논 사이에서 배를 움켜쥐고 설사를 한다. 장갑차를 앞세운 공수부대원들이 버스에 다가서고. 계엄군은 평범한 승객들을 내리게 해 줄지어 세워놓는다. 총소리.

‘화려한 휴가`는 흑백의 사진들로 각인돼있던 5·18의 상흔을 색깔을 입히고 활동사진으로 살려내 생생하게 눈앞에서 펼쳐놓는다. 온 몸이 뻣뻣해지는 충격. 시민들을 향해 날아가는 총알은 객석으로 날아들며 관객의 가슴으로 파고든다. 아프다.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흐른다.

80년 5월 광주. 그 때 그 현장, 그 때 그 사건들이 스크린 속에서 생생하게 재현되지만 영화가 이끄는 지점은 사건 속으로가 아니다. 그 때 그 사람들이다.

똑똑한 동생 진우(이준기)의 서울대 법대 진학만을 바라며 뒷바라지하는 택시기사 민우(김상경). 그에겐 첫눈에 반한 사랑이 있다. 새침하고 어여쁜 간호사 신애(이요원). 둘이 극장에서 데이트를 하는 도중 매캐한 최루탄 연기가 고개를 들이밀었고, 역사의 격랑 속으로 이들을 밀어 넣는다.

영화는 택시회사를 운영하는 신애의 아버지 흥수(안성기), 우스갯소리 잘하는 민우의 동료 인봉(박철민), 잘 나가는 제비족 용대(박원상) 등 이들 평범한 광주 시민들이 겪었을 당황, 공포, 분노, 연대감, 희망, 절망, 그리고 끝까지 지키고 싶었던 자기 존엄을 살아있는 육성으로 들려준다.

“평범한 광주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삼아 사람냄새 나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는 김지훈 감독의 목표는 일단 성공적이다. 정치적 색깔을 의도적으로 배제한 ‘화려한 휴가`는 5·18 광주가 낯선 젊은 관객을 포함한 전 연령충 관객의 눈길을 끌만한 영화로 완성됐다. 정치적 암흑을 고뇌하는 지식인의 무게보다 사랑하는 동생이 총에 맞아 주검이 된 모습에 망연해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꽤 강한 흡인력을 발휘한다.

‘화려한 휴가`는 서서히 잊혀져 가고 있는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영화로 되살려내 역사의 망각에 저항한다는 점에서 분명 미덕을 지녔다. 또 5·18을 직설화법으로 다루면서 ‘영문도 모른 채` 자기방어적으로 역사에 휘말리는 시민의 시선으로 그려낸 것도 좋다. 그러다보니 어쩔 수 없겠다 싶기도 하지만 시위에 나선 시민들의 요구와 절박성이 깊이 있게 담겨지지 못한 건 아쉽다.

제작사인 기획시대의 유인택 대표는 “5·18을 소재로 한 대중영화”임을 강조했다. 그렇다면 영화임을 빌어 시민을 향해 발포하게 한 장본인을 드러내는 것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우리를 기억해주세요”라는 신애의 절규로 살아남은 자의 죄의식을 들쑤시는 영화가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 그런 비극이 다시는 없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언질이 전혀 없는 것도 아쉽다. 잘 봤으면 됐지,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건가? 하기야 한국영화가 5·18 광주로 들어가기까지 27년씩이나 걸렸으니. 12세 이상.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백석대·백석문화대, '2024 백석 사랑 나눔 대축제' 개최
  2. 한기대 생협, 전국 대학생 131명에 '간식 꾸러미' 제공
  3. 남서울대 ㈜티엔에이치텍, '2024년 창업 인큐베이팅 경진대회' 우수상 수상
  4. 단국대학교병원 단우회, (재)천안시복지재단 1000만원 후원
  5. 남서울대, 청주맹학교에 3D 촉지도 기증
  1. 1기 신도시 첫 선도지구 공개 임박…지방은 기대 반 우려 반
  2. 올해 대전 분양시장 지형도 도안신도시 변화
  3. "전국 검객들 한 자리에"… 2024 대전시장기 펜싱대회 성료
  4. 대전 도시철도 2호선 트램 연내 착공 눈앞.. 행정절차 마무리
  5. 대덕구보건소 라미경 팀장 행안부 민원봉사대상 수상

헤드라인 뉴스


대전 분양시장 변화바람… 도안신도시 나홀로 완판행진

대전 분양시장 변화바람… 도안신도시 나홀로 완판행진

올해 대전 분양시장 지형도가 도안신도시로 변화한 분위기다. 대다수 단지에서 미분양이 속출했는데, 유일하게 도안지구의 공급 물량만 완판 행렬을 이어가며 수요자들의 높은 관심을 받았기 때문이다. 업계는 하반기 일부 단지의 분양 선방으로 기대감을 나타내면서도, 내년에 인건비와 원자잿값 상승, 제로에너지 건축물 인증 의무화 등으로 인한 분양가 상승을 우려하고 있다. 21일 부동산 업계 등에 따르면, 최근 분양한 도안 2-2지구 힐스테이트 도안리버파크 2차 1·2순위 청약접수 결과, 총 1208세대(특별공급 제외) 모집에 1만3649건이 접..

"전국 검객들 한 자리에"… 2024 대전시장기 펜싱대회 성료
"전국 검객들 한 자리에"… 2024 대전시장기 펜싱대회 성료

대한민국 펜싱의 역사를 이어갈 원석을 찾기 위한 '2024 대전광역시장기 전국생활체육 펜싱대회'가 뜨거운 열기 속에 막을 내렸다. 시장배로 대회 몸집을 키운 이번 대회는 전국에서 모인 검객과 가족, 코치진, 펜싱 동호인, 시민 2200여 명이 움집, '펜싱의 메카' 대전의 위상을 알리며 전국 최대 펜싱 이벤트로 자리매김했다. 23~24일 대전대 맥센터에서 이틀간 열전을 벌인 이번 대회는 중도일보와 대전시체육회가 주최하고, 대전시펜싱협회가 주관한 대회는 올해 두 번째 대전에서 열리는 전국 펜싱 대회다. 개막식 주요 내빈으로는 이장우..

[현장]구청·경찰 합동 쓰레기집 청소… 일부만 치웠는데 21톤 쏟아져
[현장]구청·경찰 합동 쓰레기집 청소… 일부만 치웠는데 21톤 쏟아져

<속보>="내 나름대로 노아의 방주 같아…'나는 자연인이다' 이런 식으로, 환경이 다른 사람하고 떨어져서 살고 싶어서 그런 거 같아요." 22일 오전 10시께 대전 중구 산성동에서 3층 높이 폐기물을 쌓아온 집 주인 김모(60대) 씨는 버려진 물건을 모은 이유를 묻자 이같이 대답했다. 이날 동네 주민들의 오랜 골칫거리였던 쓰레기 성이 드디어 무너졌다. <중도일보 11월 13일 6면 보도> 70평(231.4㎡)에 달하는 3층 규모 주택에 쌓인 거대한 쓰레기 더미를 청소하는 날. 청소를 위해 중구청 환경과, 공무원노동조합, 산성동 자율..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