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를 수용하더라도 새로운 파생어나 복합어를 만들어 쓰기를 곧잘 한다. 비교하면 일본어는 개방성을 띤다는 점에서 영어를 닮은 듯 마는 듯하지만 무절제함을 면할 길 없다. 우리는 그들에 대해, 새로운 것이 들어오면 번역.번안하는 과정 없이 무비판적으로 수용한다고 흉을 잡는다.
그러는 우리는 그 일본말을 좋아라 대놓고 따라 쓴다. 엄살궂게 말해 우리가 쓰는 외래어 3분의 1이 일제 영어일 만큼 일본식 조어 투성이다. 보편적으로 널리 사용하는 단어의 하나인 애프터서비스만 하더라도 일본에서 애프터와 서비스를 섞은 말을 분별 없이 받아들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영어 애프터 세일즈 서비스(after-sales service)에서 따왔음은 물론이다.
서비스, 봉사와 섬김은 넓기가 치마폭 스물네 폭이다. 가정에서도 아내가 남편에게, 남편이 아내에게 잘하면 서비스가 좋다고들 한다. 영어로는 교회 예배(worship)를 서비스(service)라 한다. 그런데 봉사, 진력(盡力), 노고, 수고, 돌봄 앞에 군더더기가 붙으면 근본을 모르는 잡종이 되고 만다. 만일 입술(lip)을 붙여 립서비스라 하면 단지 남이 듣기 좋으라는 공치사일 뿐이다.
또 그러니까 눈(eye)을 붙인 아이서비스는 누가 볼 때만 잘하는 체, 일하는 체함을 일컫는다. 윗사람이 오면 백탄 석탄 다 탄다며 부리나케 설쳐대다 그 윗사람이 사라지기가 무섭게 “삼베속곳에서 방귀 새듯”(소싯적에 아는 국회의원이 일러준 표현) 샛길로 빠지는 부류다. 다시 여기에 귀(ear)를 붙여 이어서비스라 하면 남의 말을 그저 미친 셈치고 들어주는 것이다. 이렇다 할 진심 없는 서비스들이다.
일본인 셋이 모이면 주식회사가 생기고, 중국인 셋이 모이면 차이나타운이 생기며, 한국인 셋이 모이면 회장님이 생긴다고 흔히 말한다. 풀어 쓰면 우리 감투욕이 커서 화려한 립서비스, 공허한 이어서비스 등을 좋아한다는 말도 되겠다.
실제로 윗사람의 입과 아랫사람의 귀만 서비스 정신으로 남은 조직이 많다. 서비스로 무장하려면 보건 말건, 누가 있건 없건, 괴로우나 즐거우나, 열정 섞인 가슴과 정직한 손으로 베푸는 하트핸드서비스(heart-hand-service)는 어떤가. 품질경영(QM) 측면에서 보면 ‘애프터서비스(AS)’도 제품(product)이다. 사람의 경우도 거의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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