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의 사항]
① 제시문의 문장을 그대로 쓰지 말 것
② 전체 분량은 1800(±180)자 내외로 할 것
③ 시간은 120분임.
(가)의 ‘오빠’가 느끼는 공포의 원인을 사회적 상황과 관련지어 분석하고, 이와 관련하여 현재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에 대해 (나)와 (다)를 활용하여 지적한 후, 이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시오.
(가)
“기 기 기… … 깃대빼기에 무슨 기가 꽂혔는지도 안 보여? 누 누 누… … 눈깔이 멀었냐?”
오빠가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속에서 끌어당기는 것처럼 허한 소리였지만 나에겐 아우성 소리처럼 들렸다. 오빠가 무엇을 그렇게 애타게 궁금해 하는지 드디어 명백해졌다.
오빠는 이 수도 서울에 우리 식구 말고 다른 사람이 있나 없나를 알고 싶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누구 치하(治下)에 있나가 알고 싶을 거였다. 우리가 지금 이고 있는 하늘이 대한민국의 하늘인지 인민공화국의 하늘인지 알아보기 위해 우리는 다시 겨끔내기로 내쫓겼다.
깃대빼기가 솟아 있는 건물은 형무소 말고도 몇 군데 더 있었지만 아무것도 나부끼고 있지 않았다. 국군은 시민을 죄다 피난시키고 나서 후퇴했으니 서울을 비워 준 셈이건만 인민군은 어디서 뭘 하는지 아직도 입성을 한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럼 지금 서울은 진공 상태인가. 이데올로기의 진공 상태. 좌익에도 못 붙고 우익에도 못 붙고 좌익한테도 밉보이고 우익한테도 밉보이고 순전히 그 틈바구니에서 허우적대다 이 지경이 된 오빠에게 이데올로기의 억압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야말로 황홀경이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그러나 오빠는 그 황홀경을 빨갱이로 몰리는 것보다 더 무서워하고 있었다. 사색이 되어 좌불안석, 시시각각 언어 능력조차 퇴화해 가고 있는 오빠를 지켜보면서 황홀경이란 환각처럼 미처 잡을 새도 없이 스쳐 지나가야 하거늘 하루씩은 너무 길다고 생각했다. - 박완서, 「그 산이 정말 거기에 있었을까」 -
(나)
(다)
광복절인 오는 15일 서울 시청 앞에서 진보, 보수 단체들이 동시에 8·15 기념행사를 열기로 해, 장소를 놓고 서로 신경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자유시민연대를 비롯한 보수단체들은 광복절 오후 4시부터 시청 앞에서 ‘건국 55주년 반핵 반김 8·15 국민대회’를 개최할 예정인 반면, 여중생범대위를 비롯한 시민 단체들은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반전평화 8·15 통일 대행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똑같이 8·15를 기념하는 행사이나 이 두 세력들이 준비하는 행사는 서로 성격이 판이하게 다릅니다. 가령 보수 단체들은 이번 행사에서 정부에 ‘친북’정책을 버리고 한미 동맹 강화에 힘쓸 것을 요구할 거라고 합니다. 반면 진보 단체들은 미국의 전쟁 책동 반대와 남북간의 협력의 강화를 요구할 것으로 보입니다. 한마디로 친미와 반미, 한미 동맹과 남북 합작이 한 시간, 한 자리에서 서로 부딪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념 성향이 정반대인 단체들의 행사인 데다가, 양측 모두 수만 명이 모이는 대규모 행사를 치르겠다고 벼르고 있어, 두 행사가 같은 날, 같은 자리에서 벌어질 경우 자칫 물리적 충돌까지 벌어질 우려도 있다고 합니다. 마치 해방 직후에 좌우익이 8·15 행사를 각각 종로와 남산에서 치렀던 것을 연상케 합니다. 당시 양측은 행사를 마치고 행진하다가 서로 유혈 충돌을 일으켰던 것으로 압니다. 이번에는 부디 그런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이것은 하나의 커다란 희비극입니다. 서로 다른 성향을 지닌 두 단체가 공교롭게도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같은 8·15를 기념하기 위해 정 반대되는 내용의 행사를 연다는 것 자체가 퍽 우스꽝스럽습니다. 하지만 이걸 보고도 우리가 웃을 수 없는 것은 이 두 단체가 거기에 걸어 놓은 명분의 무거움, 그리고 해방된 지 반 백 년이 넘도록 아직도 50년 전의 구태를 반복하는 우리 사회 소통 구조의 전근대적 낙후성 때문일 것입니다. <중략>
우리는 힘과 힘의 물리량의 충돌로 진행된 이념 대립의 결말이 무엇이었는지 이미 역사를 통해 알고 있습니다. 21세기를 맞은 지금 50년 전으로 돌아가 해방 전후사를 다시 반복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 진중권, <반복되는 해방 전후사> -
[논제분석·출제의도]
극단적 논리로 인한 사회적 폐해
이 문제는 ‘나와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배타적이고 편협한 태도가 초래한 사회적 폐해의 심각성에 대해 분석해 보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 사회에 아직도 남아있는 편 가르기의 행태를 지적한 후, 사회적 의사소통 구조의 낙후성을 극복하는 방법에 대해 고찰해 볼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제시문 (가)는 한국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이념 대립의 상황 속에서 사상적 선택을 강요받으며 공포에 떠는 한 개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학생들은 (가)를 통해 서로 다른 사상을 지닌 두 세력이 극단적으로 대립할 때 그 사이에서 삶과 죽음을 가를 수도 있는 선택을 일방적으로 강요받는 개인은 결코 행복할 수 없음을 분석해 내야 한다.
(나)는 사회 구성원에게 사상적 선택을 강요하며 분열과 고통을 야기했던 대립 구조가 아직까지도 우리 사회에 남아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전쟁 상황에서처럼 극단적 대립은 아니지만 민주세력과 수구세력, 진보와 보수 사이의 편 가르기에 의해 우리 사회에 분열과 갈등이 사라지지 않고 있음을 지적해 내야 한다.
(다)는 보수와 진보의 양 진영이 8.15 기념행사조차 함께 하지 못하고 물리적 충돌의 조짐까지 보이며 구태를 반복하는 현상을 비판하며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사회적 의사소통의 수준이 전근대적인 낙후성을 극복하지 못했음을 지적하는 글로 학생들은 (다)를 통해 ‘편 가르기’로 인한 우리 사회의 갈등 양상이 심각한 상태임을 분석해내야 한다.
학생들은 (가) - (다)를 바탕으로 ‘나와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편 가르기’의 구태(舊態)가 우리 사회의 역량을 감소시킴은 물론 구성원의 삶에 적지 않은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지적하고, 원활한 사회적 의사소통의 중요성을 역설하면서 ‘톨레랑스’와 같은 허용적 태도 및 열린 사고를 통해 사회적 의사소통의 수준을 제고해야 함을 주장하면 될 것이다.
[학생작품]성세인 노은고 3학년
적극적인 의사소통으로 갈등 극복해야
▲ 성세인 노은고 3학년 |
피보다 진한 ‘사상’에 의해 양분된 두 진영 간의 갈등은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으로 치달으면서 사상적 기반이 확고하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에게까지 선택을 강요하여 개인의 정신까지 황폐화시켰다.
(가)는 이데올로기의 대립이 절정에 달해 있던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극도의 공포에 사로잡힌 개인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가)의 ‘오빠’는 깃대 없는 형무소 건물을 보며 공포에 떨고 있는데 이는 자신에게 선택을 강요할 상대의 정체를 모르는 데서 오는 공포이다. 아군은 보호하고 적군은 사살한다는 배타적인 논리가 지배하는 전쟁 상황에서 선택을 강요받는 개인은 극도의 공포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러한 전쟁 상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개인은 불가피하게 어느 한 쪽을 선택해야 하며 그 결과는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운명’에 맡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선택의 기로에서 삶과 죽음 사이에 줄타기를 강요했던 한국전쟁의 이념적 사상적 대립의 구도는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진보냐 보수냐의 대립으로 재현되고 있음을 (다)는 보여준다.
분단 이후 ‘반공’을 강조하는 군부독재 정권과 그 연장의 정권을 거치는 동안 남한 사회는 조금의 다양성과 중도를 인정하지 않는 흑백논리가 외부세계를 마주하는 창이 되었다.
배타적이고 편협한 극단주의에 의해 (나)에서 보는 바와 같이 ‘편 가르기’가 자행되고 ‘모 아니면 도’식의 극단적인 논리가 지배하여 사회적, 정치적 분열이 심화되고 있다.
수많은 개인이 공존하는 하나의 사회는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는 하나의 유기체이다. 따라서 일원화 된, 혹은 이분화 된 편협한 가치만을 강조하여 개인의 주체적이고 다양한 선택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
사회가 개인을 억압하고 위협한다면, 개인은 사회를 위해 존재하는 수단으로 전락하며 그 개인의 삶은 결코 행복하지 못할 것이다.
성향이 다른 두 집단에 의해 각각 기념되는 8·15 행사가 우리에게 일깨워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그것은 해방을 맞은 지 50여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정치적 입장과 성향의 차이로 인해 사회가 하나로 통합되지 못했다는 한계를 의미한다.
이러한 한계의 원인을 (다)에서는 의사소통 구조의 전근대적 낙후성에서 찾고 있다. 서로의 입장만을 관철시키기에 급급하여 상대와의 의사소통 자체를 거부하는 태도가 극복되지 않는다면 갈등과 반목의 역사는 50년 전과 다를 바 없이 진행될 것이다.
‘한민족’의 유구한 역사와 일제 강점의 시련, 8·15 해방의 기쁨이라는 공통분모를 바탕으로 적대감과 이질감을 버리고 적극적인 의사소통을 통해 갈등과 반목으로 점철된 과거를 타개하고자 노력해야 할 것이다.
[총평]강인홍 노은고 교사
사회분열 원인 심층분석 돋보여
▲ 강인홍 노은고 교사 |
4단락에서는 ‘사회란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는 유기체이어야 함’을 강조하면서 개인의 다양한 선택을 억압하는 사회 속에서 개인은 행복할 수 없음을 역설하고 있다. 5단락은 결론으로 ‘의사소통 구조의 낙후성’이라는 우리사회의 한계를 지적하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바람직한 태도를 제시하며 글을 마무리하였다.
논제의 요구와 제시문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글의 논리적 흐름이 자연스럽게 전개됐으며, 특히 3단락에서 우리 사회에 흑백논리가 횡행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까지 심층적으로 분석해 낸 부분은 매우 돋보인다.
다만 글의 흐름상 개인의 다양한 선택을 억압하는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한 4단락의 내용은 우리 사회에 잔존하는 편 가르기의 구도가 사회 분열의 원인이 되고 있음을 지적한 3단락과 긴밀하게 연결되지 못한 느낌이 든다. 또한 3단락에서 관용어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채 사용한 부분이 있다.
‘모 아니면 도’라는 속담은 ‘어떤 일을 결정함에 있어서 판단이 잘 서지 않을 때 일단 일을 벌여놓고 보자는 심정’을 단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편 가르기’나 ‘흑백논리’와는 의미상 거리가 멀어 문맥에 맞지 않는 표현이다. 막연하게 알고 있는 단어나 관용어는 반드시 정확한 의미를 확인하고 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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