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선영 대전노은고등학교 교감 |
자습상태를 살피러 교실 뒷문을 살그머니 열고 들어갈 때마다 일제히 바라보는 모습이 ‘동물의 왕국`에 나오는 미오캣과 흡사해서, ‘자습에 몰입하지 않으면 귀가 시키겠다`고 엄포를 놓으면서도 내심 웃음을 참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비장한 각오로 자습을 희망했지만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혼자서 하는 공부가 그저 막막한, ‘자기주도적인 학습 능력`과 사뭇 거리가 있는 일학년들에게 세 시간의 야간자율학습이 얼마나 힘든 고행이랴.
고교 시절의 아이들은 참으로 빨리 성숙한다. 아이들을 지켜보면서 터득한 것은 야간자습의 긍정적인 효과, 힘이다. 두어 달이 지나면 아이들은 강요하지 않아도 종소리와 함께 자리에 앉아 책을 펼친다. 학교 정규 수업과정 외에 삶의 어느 시기에 어디서 이루어지는 순치교육이 이렇듯 자율적인 학습습관 형성 효과가 있을까?
절실하게 아쉬운 것도 없고 무엇이 되겠다는 삶의 목표나 가치관도 서 있지 않으면서 유혹이 많은 시대를 살아가는 청소년들이 게임에 몰두하거나 거리를 배회할 가능성이 많은 야간에 개인적 특성을 파악하고 있는 선생님의 지도로 이루어지는 자율학습은 여러 사람들이 개탄해 온 것처럼 해악성을 지닌 것이 아니다. 그 시간에 책을 읽고 문제를 해결하면서 총기 있는 젊은 두뇌는 지식과 사고를 구조화, 내면화하며 점진적으로 성숙해 간다. 주어진 현실에 순응하는 마음가짐과 체득된 지식의 상승 작용으로 보다 큰 앎(知)의 세계로 나아간다. 급우들과 학습방법, 개인적 갈등에 대한 교감을 하면서 학력도, 정신도 자란다. 산만했던 아이들이 자신의 학습계획대로 몰두해서 공부하는 모습, 사려 깊어진 눈빛에서 나는 자율학습의 힘을 실감한다.
필요성이나 효율성에 대한 논의가 분분한 가운데 야간자율학습이 시행된 지 오랜 시간이 흘렀다. 선생님들은 자습지도까지도 자신의 직분인 양 사생활을 포기한 채 자정이 가까운 시간까지 측은하고 미안한 마음으로 아이들을 보살피는데, 사회나 언론, 심지어는 자녀를 위해 야간자율학습을 희망한 학부모마저도 야간자습을 비교육적, 비인간적 행위라 지탄하고 그것이 학교나 선생님들의 탓인 양 책임을 묻는 경우도 있어 우리를 섭섭하게 그리고 기운을 잃게 한다.
개선책이라며 자주 바뀌는 대입제도의 실험대상이 된 듯 혼란과 두려움을 느끼는 아이들을 오늘도 안타까운 눈으로 지켜본다. 입시경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어 어른들이 마련한 것이 야간자율학습이라면 이제 소모적인 논쟁은 접어야 한다. 선생님의 지도로 자기 교실에서 안전하게 이루어지는 자율학습의 효과를 긍정하고 보다 합리적인 운영 방안 모색에 지혜를 모을 일이다. 더불어 부모의 당연한 의무이며 권리인 자녀의 야간자습 지도를 대신하고 있는 선생님이나 학교에 대한 학부모와 사회의 시각도 변화할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