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들 모습담긴 사진.영상 등 전시
잊혀져가는 것들을 돌아보는 계기
사람들은 떠났고, 반쯤 폐허가 된 건물만이 남았다. 지난 20일 충남 연기군 남면 종촌리, 형태만이 앙상하게 남은 콘크리트 구조물 안에는 사진과 화면 속에 담긴 주민들의 모습과 음성이 떠난 사람의 빈자리를 대신했다.
굽은 허리로 지팡이를 지렛대 삼아 힘겹게 거닐던 노인과 해맑은 웃음으로 골목 어귀를 시끌벅적하게 만들던 아이들의 모습이 선명하게 박힌 현수막이 거리 곳곳에 내걸렸다. 문방구, ○○오토바이, 다실. 채 치워지지 않은 간판만이 원래의 용도를 말해주는 건물 안에는 주민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과 영상 그리고 설치 작품들이 채워졌다.
▲ 신명식 作 '종촌을 달리다' |
행정도시 예정지인 이곳 종촌리는 기공식에 맞춰 시작된 공공미술 프로젝트 `종촌-가슴에 품다`로 오랜만에 활기를 되찾았다.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한 29명의 작가는 주민들이 이주를 시작한 지난해 말부터 사진과 영상, 음향 등 각자의 방식으로 종촌의 모습을 작품 속에 담아냈다.
남면사무소를 중심으로 골목을 따라 10곳 이상의 건물 외벽과 내부에 전시 작품이 설치됐다. 종촌교회 안에는 행정도시 소식을 전하는 방송보도와 주민들의 음성, 음악이 뒤섞여 주파수가 어긋난 오래된 라디오 소리처럼 아련하게 울려퍼진다. 음향센서를 이용해 기억의 재생을 시도한 정하응씨의 작품 `DOCU종촌-Epitaph`다.
교회 한켠 골방에서는 주민들의 모습이 담긴 영상이 요란한 기계소리와 함께 흘러나오고, 예배실 벽면에는 사진을 이어붙여 만든 `안녕`이란 두 글자가 선명하다. 두 노파가 수건을 말아 올리고, 낡은 소파에 앉아 있는 사진 속 허름한 미용실 풍경이 인상적이다. 모두가 전시 작품의 일부다.
▲ 정주하 作 '종촌에 묻다' |
얼마 전까지 오토바이 대리점으로 쓰이던 건물 안에는 장난감, 수저 등 이길렬씨가 종촌의 철거 현장에서 수집한 물건들로 작업한 소품이 가지런히 전시돼 있다. `수다실`이란 간판이 분명하게 남아 있는 건물. 조그만 구멍을 통해 들여다 본 내부에는 30년간 이어 온 찻집의 풍경이 그대로 재현돼 있다.
전재홍씨는 두 장의 대형 사진을 원근감을 이용해 설치하고, 일종의 착시 현상을 일으키도록 하는 `미술관 속 미술관`을 이곳에 전시하고 있다. 마을 배경 위에 사람들이 마치 유령처럼 떠 있는 정주하씨의 합성 사진은 종촌의 현재를 그대로 보여 주고 있는 듯하다.
▲ 최평곤 作 '희망의 손' |
전시 현장에서 만난 이섭 공공미술 프로젝트 예술감독은 "장소 사용을 위해 토지공사와 건물주, 철거업체 모두에 허가를 받아야 하는 등 전시가 이뤄지기까지 많은 어려움도 있었다"며 "잊혀져 가는 것, 사라져가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전시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종촌리 일대에서 진행되는 이 전시는 8월 2일까지 계속된다.
※공공미술이란? 대중을 위한 미술을 뜻하는 말로 공개된 장소에 작품을 설치 또는 전시하거나, 건물이나 공간 자체를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연결시키는 미술 개념이다. 공원의 조각이나 벽화 등도 이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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