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책감이 불러들인 원혼의 공포
무섭다기보다는 오히려 슬프다
복부가 붙은 채 태어난 핌과 플로이는 열다섯살이 되던 해에 분리수술은 받는다. 그러나 수술과정에서 플로이는 죽고 핌만 살아남는다. 그로부터 16년이 흘러 남편 위(윗타야 와수크라이파이산)와 서울에서 살고 있는 핌(마샤 왓타나파니크)은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태국으로 향한다. 핌에게 죽은 플로이의 영혼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샴쌍둥이란 독특한 소재를 불러들였지만 새로운 맛의 공포를 선사한다고 하기엔 뭔가 부족하다. 무엇보다 공포영화치고 그리 무섭지 않다. 죄책감이 불러들인 원혼의 이야기, 갑자기 음량을 높인 효과음과 끔찍한 장면이 담긴 클로즈업을 동시에 들이대는 식의 ‘깜짝쇼`는 관객들도 익숙해진지 오래다.
전반부는 밋밋하고 지루하다. 뒤를 보고나면 그것도 전략. 핌과 플로이의 과거가 온전히 드러나는 반전과 마주하면 알게 된다. 관객에게 핌의 죄책감을 철석 같이 믿게 한 다음 공포의 실체가 당신이 짐작했던 그런 뻔한 게 아니라며 뒤통수를 친다.
신선하지도 아프지도 않은 깜짝쇼보다 가슴을 두드리는 건 서정적이고 비감이 잔뜩 서린 분위기다. 이 영화의 미덕은 기본에 충실하다는 데 있다. ‘셔터`의 팍품 웡품과 반종 피산타나쿤 감독은 공포영화 본연의 충격 효과를 희생할망정 이야기와 인물의 심리를 놓지 않는다. 샴쌍둥이를 볼거리로 전락시키지 않고 예의를 깍듯이 지킨다. 몸은 하나지만 마음은 둘로 나뉘는 샴쌍둥이의 심리적 고통과 아픔을 최대한 가깝게 표현하는 데 꽤 공을 들인다.
공포영화라기보다 비극 한 편을 봤다고 해야 할 것 같다. 무섭다기보다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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