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나경 미국 신시내티 교향악단 플루트 부수석 |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의 화려한 모습만을 보고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내가 어릴적부터 지금까지 늘 좋은 일만 있어왔는 줄 아는 것 같다.
하지만 오늘은 밝혀두고 싶었다. 사실 그렇게 화려하고 멋진 일들보다는 오히려 전혀 그렇지 못했던 시기가 더 많았더라는 것을... 무엇보다도 부끄러운 마음이 앞선다. 세상에 태어나서 어려운 일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없고, 모두 자신의 고통이 가장 버겁다고 느껴지기 마련이니까 말이다.
대전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음악을 더 배우기 위해 무작정 서울로 떠났던 그날부터 나의 유학생활이 시작됐다. 예원학교에 입학한지 한달도 채 못돼, 그렇게 자신있게 내렸던 서울 유학의 결정에 대한 책임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매일 밤 참 많이도 울었다.
처음으로 사무치게 그립다는 감정을 알게 됐고, 처음으로 외롭다는 감정을 알게 됐다.걱정이 되신 부모님께서는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지 다시 대전으로 내려와서 일반 중학교를 가면 된다고 하셨지만, 그럴수록 내 안에 있는 왠지 모르는 힘이 나를 움직였다. 가족이 너무나 보고싶었지만, 그래도 음악을 하고 싶었고, 꼭 그 꿈을 이루고 싶었다. 다행스럽게도 연습을 하다보면 잠시나마 외로움을 견디어낼 수 있었던 기억이 난다.
고등학교1학년 때 더 많이 배우고 싶다는 욕심과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다는 욕망에 미국으로의 유학을 택하게 됐고, 정말이지 밤낮으로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어느 상황에 있든지 나중에 돌아보았을 때 최선을 다했다며 자신에게 당당하고 싶었다. 다음날 아침 해가 뜰 때까지 연습을 했던 적도 있었고, 그저 음악을 한다는 행복에 겨워 울면서 연습을 했던 적도 있었다. 미국이라는 먼 땅에까지 온 만큼 더 많이 열심히 하고 싶었다.
손이 아파서 수개월동안 악기를 전혀 하지 못한 때도 있었다. 의사들이 내가 다시는 악기를 하지 못할 거라고 장담할 때, 그래도 내 자신을 한번 더, 아니 백번이고 천번이고 더 믿어주면서, 그래도 나는 악기를 다시 할 거라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어야했던 시절의 기억도 생생하다.
모든 것이 그렇겠지만서도 특히나 음악이라는 것은, 사랑이 없으면 하지 못한다. 음악 그 자체를 한다는 데에 대한 희열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은 음악을 하는 의미가 없다고 본다. 우리가 사랑을 할 때, 누가 시켜서 억지로 하는 게 아니라 마음이 자신을 이끌어가는 것처럼, 내게 있어 음악은 그런 피할 수 없는 큰 사랑의 존재였다.
음악에 대한 열정, 사랑, 그 간절함이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도록 이끌어주었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힘들고 고달픈 모든 상황이 음악에 대한 사랑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무너지고, 아무것도 아닌 듯이, 그렇게 무사히 지나갔던 것 같다.
오늘도 음악이 있음에, 음악을 매일 연주할 수 있음에 한없이 감사하면서 미국 버몬트 주 말보로 음악제에서의 한여름 밤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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