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쇄살인의 열쇠는 시체가 쥐고 있다
시작은 무섭다 하지만 끝이 영…
캐러비안의 해적 3, 오션스 13, 뜨거운 녀석들, 디센트, 트랜스 포머, 해리 포터와 불사조 기사단…. 외국 영화의 세례를 듬뿍 받은 탓인지 한국 영화를 본 게 언제인지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더 반가웠다. 한밤의 해부학 실습실. 차가운 금속성 테이블에 놓인 카데바(해부용 시체). 그리고 핏물. 생각만으로도 등골이 서늘해진다. 해부 실습실의 정경은 말초적인 공포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해부학 교실’은 제목만으로도 50점은 먹고 들어가는 공포영화다. 첫 해부학실습을 앞둔 여섯 의대생이 있다. 아픈 과거를 숨기고 있는 선화(한지민)와 병원 이사장의 아들 중석(온주완), 천사표지만 어딘가 음습한 구석이 있는 기범(오태경), 공부벌레 은주(소이),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심약한 경민(문원주), 의대생이라기보다 연예인 지망생 같은 지영(채윤서).
마침내 실습 첫 날. 장미 문신이 있는 여자 카데바에 메스를 댄 이들은 이상한 기운에 휩싸인다. 아니나 다를까 하나 둘씩 살해당하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이 사건의 비밀이 카데바와 관련돼 있음을 직감한다.
공포영화의 미덕이 공포를 불러내는 거라면 ‘해부학 교실’은 일단 성공적이다. 무섭다. 신선한 소재에 개성 넘치는 연출, 나름대로 탄탄한 내러티브를 갖췄고 말초신경을 자극하기보다 이야기에 무게를 둔 점도 눈에 띈다.
미장센도 괜찮다. 공포의 대상인 해부용 시체 모형은 미술팀의 노력이 확연히 느껴질 만큼 진짜같다. 메스로 난도질 당한 시체가 혈관과 근육을 드러낸 채 금방이라도 일어날 것처럼 느껴지는 건 영화가 이뤄낸 성취다.
하지만 공포영화가 공포라는 과정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는 거라면 ‘해부학 교실’은 실패다. 뒤끝이 영 개운치 않기 때문. 중반을 넘어서면서 이야기는 허둥대기 시작하고 카데바의 과거 이야기를 지루하게 늘어놓는다. 결론 또한 진부하기 짝이 없다. 우리 공포영화들이 숱하게 늘어놓은 여인의 한(恨)이라니. 제대로 된 한국형 공포영화는 언제쯤 볼 수 있으려나 하는 장르 팬들의 한은 누가 풀어주려나. 15세 이상.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