깐깐한 英 평론가들조차 떨게 만들어
폐소공포에서 하드코어, 심리공포…
동굴에 갇힌 여성들의 서바이벌 게임
2005년 여름. 영국의 극장가는 관객들의 비명소리로 서늘했다. 동굴 속에 여자들을 던져 넣고 오로지 장르적인 재미 하나만을 좇아 달려가는 이 무섭고 잔인한 영화에 준엄하기로 소문난 영국의 평론가들도 몸을 떨었다.
“놀라서 좌석에서 뛰어올랐고 질렸고 움츠러들었다. 그리고 내내 숨을 죽였다”(‘옵저버`의 마크 게모드),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한쪽 손을 귀에다 대고 다른 손은 눈앞에 대고 있었다”(‘타임스`의 제임스 크리스토퍼), “모든 폐소공포증 환자들은 이 영화를 보지 말라는 엄마의 충고를 듣는 게 좋을 거다”(‘가디언`의 피터 브래드쇼). 공포소설의 대가 스티븐 킹도 “의심할 여지없는 올해 최고의 공포”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이미 확인한 사람도 있겠지만 영화평들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디센트`는 무섭다. 공포영화에 기대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기대 이상으로 보여준다.
줄거리는 날씬하다. ‘디센트`는 존 부어맨의 불쾌한 호러영화 ‘서바이벌 게임`을 연상시키는 장면으로 서막을 연다. 래프팅을 즐기는 한 무리의 여자들. 이들은 행복하고 대담하고 모험을 즐기는 친구들이다.
돌아오는 길에 세라(쇼나 맥도널드)는 교통사고를 당하고 남편과 딸을 잃는다. 1년 뒤, 친구 주노(나탈리 멘도자)는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세라를 깊은 산속으로 초대한다. 여섯 친구들은 세라의 기운도 북돋워줄 겸 애팔래치아 산맥의 동굴 탐험에 나선다.
지옥의 목구멍 같은 동굴로 내려가기 전 리더 격인 주노는 친구들에게 경고한다. “폐소공포증, 환각, 탈수, 방향상실을 겪게 될지 모른다.” 그 경고는 그대로 관객들에게도 적용된다.
비명의 롤러코스터가 출발한다. 동굴 입구가 무너져 내리고 어둠에 갇혀 버린 그들. 출구는 보이지 않는다. 설상가상. 수만 년 동안 동굴 속에서 진화해온 인간형 포식자들이 신선한 날고기 냄새에 꿈틀대기 시작한다.
닐 마셜 감독은 공포의 ‘성감대`를 정확히 건드린다. 네발로 기며 어둠을 더듬는 이 영화에서 손끝에 닿는 건 없다. 어둠 속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모를수록 ‘디센트`는 짜릿하다.
핏물이라도 배어나올 것 같은 끔찍하기 짝이 없는 폐쇄공포의 공기는 시종일관 관객의 호흡을 휘젓는다. 심리공포를 겹겹이 쌓아가던 영화는 부러진 다리뼈가 피부를 찢고 나오는 신체훼손으로 진전되고 급기야 핏물구덩이 속으로 관객들을 몰아넣는다. 말초신경의 전율부터 근원적 두려움에 이르는 다채로운 공포가 곳곳에서 공격해온다.
더욱 무서운 건 잔인한 장면보다 장면이 지나간 뒤 남는 잔상이 더욱 몸서리쳐지는 피 냄새로 기억된다는 거다. 관객들을 놀라게 하는 효과를 이야기의 짜임새와 전개를 위해 차곡차곡 구축해 정점에서 터뜨리는 솜씨는 대가의 그것이다.
인물들이 실제로 소지한 랜턴 횃불 형광봉 등으로 조명을 제한한 샘 매커디의 촬영은 컴퓨터 화면이 아니라 큰 스크린으로 봐야 제대로 맛을 낸다.
공포영화로서 ‘디센트`가 더욱 훌륭한 점은 상투적 결말을 뒤집어버린 마지막 반전에 숨어있다. 괴물들은 내부의 악몽을 끌어내는 장치일 뿐. 진짜 공포는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 있다.
바닥에 떨어졌다고 생각한 순간 다시 바닥이 열리면서 추락하는 그 아득한 공포감. ‘디센트`는 공포의 원형을 정확히 알고 있는 무섭고 아주 잔인하고 아주 영리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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