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의 주변에서도 많은 부문에서 변화를 이야기하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무엇이 어떻게 변화해야 되는지에 대해서 혼란이 빚어질 정도로 우려를 갖게한다. 앨빈 토플러는 “심층기반을 알고 나면 혼란스러워 보이는 오늘날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기 하면서 심층기반을 「시간의 재 정렬,」「 공간의 확장,」「 지식에 대한 신뢰,」등으로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다. 이 등식을 적용해서 지금 변화를 추구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명제들이 가지고 있는 기반의 문제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에 대해서 성찰해 보고자 한다.
먼저 사회이익과 개인의 이익이 동행관계인지 아니면, 역행의 관계인지를 생각해 본다. 우리의 역사에는 국가의 존립기반까지도 팔아서 개인의 이익을 챙기는 사람을 반역자이거나 아니면 앞날을 잘 못 보는 사람으로 낙인찍고 단죄할 것을 부르짖는다. 우리 사회에 있어서도 생각할 바가 없지 않을 것이다.
위의 내용과는 무관할 수 있지만 요즈음 시내버스 파업의 문제나 이와 유사한 집단의 이익과 관련된 여러 종류의 투쟁적 행동이 국가간의 경쟁에서 불리하게 하고, 사회적으로 무고한 시민들에게 고통을 받게 한다면 이것이 변화의 심층기반이란 합리적 질서를 뒤흔드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지 않는지 함께 생각해 볼 일이다. 사회적 공동체의 이익은 개인의 이익과 한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하고, 그것이 문제를 안고 있을 때는 합리적으로 조정되어야 하며, 도저히 합치가 불가능 할 때는 최소화를 전제로 한 개인의 희생을 감수하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역사는 일정부분 관성(慣性)을 지니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초법적 투쟁이 불가피할 때도 있었지만 어떤 부문에서는 평화적 민주질서 사회인 지금까지도 그 같은 관성이 일부 지속되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갖게 한다. 만일 그 같은 관성이 윤리적으로나 상식적으로나 법질서 내지는 공익의 측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하면 청산함이 마땅할 것이다.
두 번째는 정치의 심층기반이 국민의 행복과 국가의 융성이라는 심층기반에 적합하게 전개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현실 정치에 대해서 말할 게재는 못되지만, 국민의 머리가 맑아지고 , 윤리의 거울에 조화와 질서가 흐뭇하게 비칠 정도로 전개되고 있는지에 대해서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언론도 국민과 국가라는 심층기반을 바탕에 두고 일깨우는 역할을 단 한 줄의 기사에서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임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셋째로는 지식기반의 문제이다. 지식기반은 두 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하나는 짧은 기간에도 낡은 지식이 되어버리는 뒤떨어진 지식.정보를 적절한 시기에 개편하지 않는 것이고, 그 다음으로는 기능적.기술적.단순 논리적 지식을 가지고 자만하는 지식인 역할을 버리지 않는 것이다. 새로운 지식으로의 개편을 게을리 하지 않으면서 신념화의 수준에 이르기까지 심화할 수 있어야 하고, 외적으로도 신뢰받을 수 있는 객관적 합리성과 참신성을 지녀야 한다. 시 교육원에서도 피교육생이 고객이 아니라 시민과 행정기관이 고객이라는 입장전환을 바탕으로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양성해서 공급하는데 충실할 수 있는 교육 컨텐츠 개발에 부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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