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춘추]밤꽃 피는 유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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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춘추]밤꽃 피는 유월에

  • 승인 2007-06-28 00:00
  • 신문게재 2007-06-29 20면
  • 강병철 작가강병철 작가
누가 저 벌판에 초록빛 보자기를 덮어씌웠나? 그 녹음방천, 유월의 그늘자락으로 흘러간 사진첩의 기억들이 겹쳐진다. 맨 처음 유년 속의 유월은 ‘호국의 달`이었다. ‘반공` `방첩` 명찰을 달고 풋감을 우려먹으러 여기저기 감나무 아래를 기웃거리던 도장병 아이가 있었다. 그 후 상급반이 되면서 반공웅변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감나무에 매달려 목이 쉬도록 연습하던 소년의 그림이 겹친다.

‘이승복`과 ‘이수근`을 올려놓고 열변을 토하다 보면 실제로 눈물이 뚝뚝 떨어지기도 해서 또래의 관중들로부터 박수갈채를 받기도 했다. 그 위로 사춘기 수험생의 유월이 오버랩된다. 그즈음 막연한 시국의 불안감으로 이따금 우울하기 시작했었다. 서울 원효로 승리독서실 계단으로도 대학생 수배자 명단을 보면서 처음으로 사회구조를 떠올려보았던가.

재수생 선배는 빨갱이라고 손가락질했지만 나는 ‘모든 장밋빛 전망`을 포기하고 수배자의 길로 뛰어든 서울대학생의 속내가 궁금했다. 인혁당 선고는 사형과 무기징역 사이의 엄청난 간극을 보여주었으니 망자의 허망함과 산 자의 고투에 대한 적나라함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대통령이 체육관 선거로 갈채를 받는 사이에도 사람들은 쏜살같은 세월의 주파수를 타고 절망과 희망이 오르락내리락거렸다.

자본주의의 업적이 불안하게 쌓여가던 스무 해전 유월, 마침내 시민들의 함성이 독재의 벽을 무너뜨렸다. 도저히 무너지지 않을 것 같던 거대한 철옹성이 허물어지던 날 이 땅의 민중들은 비로소 변혁과 진실의 승리를 믿었었다. 그랬다. 분명히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면서도 제도언론이 ‘6.29의 공`을 재빨리 집권당 후보에게 돌리는 것 같아 어리둥절하기도 했던 것 같다.

그 믿음이 복잡다기하게 변화하는 걸 지켜보면서 ‘역사는 나선형으로 발전한다`라고 마음을 다지고 또 다졌다. 그 후로도 자본주의는 불안을 먹고 약진했고 세상은 마이카와 핸드폰과 인터넷 천지로 탈바꿈했다. 그 자본주의의 절정은 2002년 유월 월드컵 4강 진출이었던 것 같다. 이상하다.

물살처럼 모인 무리들이 스스로를 ‘붉은 악마`라고 호칭해도 아무도 빨갱이 잣대를 제시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듯 자발적으로 모이고 뭉치고 공동체의 소리를 확인하면서도 사람들은 자본의 수렁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배고픔과 눈물빵과 맨몸의 기억이 바이킹과 래프팅과 골프채에 묻히는 것이다. 작금의 아이들은 민주주의와 빵과 통일과 사랑의 체취를 절대로 심도 있게 느낄 수 없다. 맨살 부비고 기대고 의지하던 순정보다 인터넷 채팅이 더 재미있기 때문이다.

밤꽃 피는 유월이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보리가 꺼럭끼리 부딪쳐 장맛비 뿜어올리는 초록의 계절에 아, 철없는 시인은 앞으로도 영원히 약자들을 향해 살아갈 것이라고 옷깃을 여민다. 그 바람이 센티멘탈임을 알면서도 왜 그리 가슴이 아픈 것일까? 지천명의 그 사내 눈이 참으로 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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