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세평]시내버스 준공영제 탓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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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세평]시내버스 준공영제 탓하기

  • 승인 2007-06-27 00:00
  • 신문게재 2007-06-28 20면
  • 김재영 충남대학교 언론정보학과 교수김재영 충남대학교 언론정보학과 교수
올해 초 수업교재로 쓰려고 집어든 책에서 접한 유머다. 어떤 사람(갑)이 가로등 아래에서 뭔가를 열심히 찾고 있었다. 지나가던 사람(을)이 “무엇을 잃어버렸느냐”고 하자, 갑은 “열쇠를 잃어버려 찾는 중”이라고 답했다. 을이 도와주겠다고 나섰다. 둘이서 한참을 찾아도 열쇠는 나오지 않았다.

그러자 을이 “당신이 열쇠를 잃어버린 곳이 여기 맞습니까? 잘 생각해 보십시오”라고 말했다. 그러자 갑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아니오. 내가 열쇠를 잃어버린 곳은 이 가로등 밑이 아니라 저쪽 캄캄한 곳이오.” 을이 다시 물었다. “아니, 열쇠를 잃어버린 데가 저 캄캄한 곳이면 거기서 열쇠를 찾아야지 왜 이 가로등 아래에서 찾습니까?” 갑이 대답했다. “여기가 밝으니까요.”

저자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제가 발생한 근원을 들여다보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이 유머를 끌어들였다. 지극히 평범한 사실이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종종 있다. 이른바 쥐가 들끓는 곳에 고양이가 나타나니 고양이를 없애자고 나서는 식의 ‘본말전도`다.

최근 대전에서 벌어진 시내버스 파업을 보자. 시민들의 ‘발`이 운행을 중지했기에 이들이 겪어야 할 불편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때마침 장맛비도 내리기 시작해 시민들의 원성이 하늘을 찔렀다. 여느 경우처럼 사용자와 노동조합 간의 임금 인상 폭을 둘러싼 힘겨루기에 시민들이 볼모로 잡힌 형국이다. 그런데 이 와중에 시행 2년도 채 되지 않은 ‘준공영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마치 문제의 핵심이 이 제도인 것처럼 거론되고 있다. 그럼 시내버스 준공영제에서 다시 과거로 돌아가면 시민의 발을 붙들어 매는 파업이 사라진다는 말인가?

준공영제는 정상적 운영으로 적정한 수익을 거두기 힘든 시내버스 사업을 시민의 세금, 즉 공적 자금으로 보전해주는 것이다. 이는 운송비용 절감 식의 효율성을 추구하기보다 경제적 약자의 교통권 보호를 위한 서비스 공급의 안정성에 무게를 둔 제도다. 이 제도가 당초 취지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그 차원에서 개선이나 폐기를 논해야지 파업 시점에 준공영제를 타깃으로 삼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심지어 준공영제 실시 이후 사실상 사용자가 된 대전시가 파업의 책임을 제도의 문제로 돌리고 노동조합을 압박해 협상에서 유리한 입지를 점하려는 불순한 의도마저 읽힌다.

언론도 준공영제가 사태의 원흉인양 여론을 한쪽 방향으로 몰고 나갔다. 누가 보면 대전시와 담합이라도 한 것처럼 준공영제의 폐단에 대해 서로 주거니 받거니 했다. 현상에 얽매이지 않고 문제의 본질을 놓치지 않는 사회의 ‘목탁` 구실도, 사회적 약자의 ‘대변자` 역할도 포기했다.

얼마 전 한 주간지에서 읽은 칼럼니스트 김규항의 글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아무개는 오랫동안 부잣집 아이들만 다닌다는 사립초등학교 교사였다. 그는 지난해 거길 그만두고 어떤 가난한 동네의 초등학교로 옮겼다. 그런데 그곳으로 옮기고는 퇴근만 하면 우울해하고 술이라도 걸치면 어김없이 눈물을 보였다. 연유를 물으니 그러더란다. “아이들이 격차가 있다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어. 여기 학교 아이들은 한 반에서 다섯 명 정도를 빼곤 지난번 학교에서 가장 공부 못하는 축에 껴. 거기에다 왜 여기 아이들은 키도 덩치도 작고, 또 왜 이리 아픈 아이들도 많은지….”

이 아이들과 파업에 참여한 시내버스 조합원들의 처지가 자꾸 겹쳐서 머리에 떠오른다. 이들을 감싸주지는 못할망정 이들이 손가락질 받도록 하지는 마라. 게다가 준공영제 운운은 열쇠를 잃어버린 곳이 아니라 그저 밝기만 한 가로등 아래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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