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서 죽을 것인가?
남한산성에 갇힌 조선왕
그 치욕의 한달 속으로…
▲ 남한산성 저자: 김훈 |
남한산성이 현재의 모습을 갖춘 것은 후금의 위협이 고조되고, 이괄의 난을 겪은 인조 2년(1624)이다.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 때 왕이 이곳으로 피신했는데, 강화가 함락되고 양식이 부족하여 인조는 세자와 함께 성문을 열고 삼전도에서 치욕적인 항복을 했다. 그 뒤 계속적인 수리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역사소설 `남한산성`은 이곳을 배경으로 한 베스트셀러 작가 김 훈의 작품으로 현재 소설 부문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책이다.
소설가 김 훈은 1948년 서울생으로 신문기자 생활을 하다 소설을 쓰면서 유명해졌고, '빗살무늬토기의 추억', '칼의 노래', '현의 노래'등 주로 역사소설을 통해 일반인에게 알려진 작가다. '칼의 노래'는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 초기에 읽기 시작하면서 세간에 알려져 베스트셀러에 올랐으며, 작가는 이후 자전거 레이서 취미를 살려 '자전거 여행' 이란 산문집도 출간했다.
소설 '남한산성'은 이렇게 시작한다.
"서울을 버려야 서울로 돌아올 수 있다는 말은 그럴듯하게 들렸다. 임금의 몸이 치욕을 감당하는 날에, 신하는 임금을 막아선 채 죽고, 임금은 위패를 끌어안고 죽어도, 들에는 백성이 남아서 사직을 회복할 것이라는 말은 크고 높았다."
『남한산성』은 1636년 12월 14일부터 1637년 1월 30일까지 갇힌 성 안에서 벌어진 말과 말의 싸움, 삶과 죽음의 정치에 관한 참담하고 고통스러운 낱낱의 기록을 담고 있다.
"죽어서 살 것인가, 살아서 죽을 것인가? 죽어서 아름다울 것인가, 살아서 더러울 것인가?" 김훈은 370년 전 조선 왕이 ‘오랑캐`의 황제에게 이마에 피가 나도록 땅을 찧으며 절을 올리게 만든 역사적 치욕을 정교한 프레임으로 복원하였다. 갇힌 성 안의 무기력한 인조 앞에서 벌어진 주전파와 주화파의 치명적인 다툼, 그리고 꺼져가는 조국의 운명 앞에서 고통 받는 민초들의 삶이 씨줄과 날줄이 되어 무섭도록 끈질긴 질감을 보여준다.
당시 청나라의 전신이었던 후금의 칸에게 인조가 무조건 항복을 하고 조인식을 가지는 장면에서는 눈물이 날 정도로 분노가 솟아 오른다.
“주전파의 말은 실천 불가능한 정의였으며, 주화파의 말은 실천 가능한 치욕이었다.”
쓰러진 왕조의 들판에도 대의는 꽃처럼 피어날 것이라며 결사항쟁을 고집한 척화파 김상헌, 역적이라는 말을 들을지언정 삶의 영원성은 치욕을 덮어서 위로해줄 것이라는 주화파 최명길, 그 둘 사이에서 번민을 거듭하며 결단을 미루는 임금 인조. 그리고 전시총사령관인 영의정 김류의 복심을 숨긴 좌고우면, 산성의 방어를 책임진 수어사 이시백의‘수성(守城)이 곧 출성(出城)`이라는 헌걸찬 기상은 남한산성의 아수라를 한층 비극적으로 형상화한다.
김훈 특유의 뜨거운 말의 화살은 독자를 논쟁의 한가운데로 내몬다. “죽어서 살 것인가, 살아서 죽을 것인가? 죽어서 아름다울 것인가, 살아서 더러울 것인가?” 작가는 주화를 편들지도, 주전을 편들지도 않는다. 다만 지도층의 치열한 논쟁과 민초들의 핍진한 삶을, 연민을 배제한 시각으로 돌아볼 뿐이다.
김훈은 370년 전의 치욕을 왜 21세기인 지금 다시 꺼낸 것일까? 작가는 무엇보다 ‘치욕을 기억하라`고 말한다. ‘삶은 치욕을 견디는 나날`이라고 말한다. ‘살아남기 위해 불가피하게 더럽혀지는 인간들이 아름답다`고 말한다. 역사가 삶과 죽음의 기록이라고 할 때, 치욕의 역사는 살아 낸 삶의 이력이다. 이 치욕이 단지 과거완료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 미래형이 될 수 있음을 작가 김훈은 에둘러 말하려는 것이 아닐까? 치욕을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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