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립지로 결정된 둔산지구의 녹지공간, 도시공원부지 잠식으로 인한 환경문제도 그러했고 각 지역에 골고루 돌아가야 할 문화예산의 특정구역 편중 시비도 짚고 넘어가야 할 사안이었다.
교통수단이 발달하여 다소 외곽지역에 세워지더라도 관람과 운영에는 별 문제가 없을 뿐더러 오히려 해당지역 발전의 견인차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아울러 준비기간동안 시의회와 조율없이 이미 내정된 사항을 요식 절차에 따라 동의안 처리에 붙인 행정관행도 질타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이응노 미술관 건립자체를 반대하는 분위기는 아니어서 미술관이 가져올 여러 긍정적 효과와 부가가치에 쏠린 공감대가 결국 대세를 이루었다.
부지 주변에는 시립 미술관, 예술의 전당, 엑스포 과학공원 그리고 대전수목원 등이 인접하여 새로운 문화벨트로 각광받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였다.
이즈음 추세는 동종 또는 유사한 업종의 산업체, 시설, 건물, 공간이 밀집하여 상호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는 이른바 클러스터 구조를 선호하는 데다 세계적인 작가의 작품세계를 온전히 펼쳐보일 문화명소로 자리잡으려면 지금의 위치외에는 뾰족한 대안이 없었던 까닭이기도 했다.
올 5월 3일 개관이후 한달동안 2만3000명의 방문객, 하루 평균 800명이 다녀갔다고 한다. 개관초 매스컴의 집중소개덕분도 있었고 중고교생들의 수행평가 현장으로 활용된 점을 감안하면 방학과 휴가철로 접어드는 이제부터 본격적인 마케팅을 펼쳐야 할 시점이다.
타고난 예술가가 군사정권 시절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대전교도소에 수감되면서 싹튼 대전과의 인연은 선생의 왕성한 옥중 작품활동으로 고통스럽고도 아름다운 결실을 맺는다. 교도소에서는 따로 작품창작 공간을 마련해 주었다는데 가까이 지켜본 당시 교도관들의 증언은 모두 ‘진정한 예술가, 거장, 혼을 불사른 작가, 그림밖에 모르는 사람’으로 모아진다.
개인이름을 딴 미술관이 주기 쉬운 단조로움과 경직성을 벗어나 움직이는 문화공간으로 자리잡으려면 발상의 전환과 새롭고도 파격적인 기획이 필요하다.
바로 옆에 있는 시립미술관이 현대미술과 미디어 아트를 중심으로 움직인다면 이응노미술관은 차별성을 두어 우리 미술의 정통성을 현양하고 국제적인 교류, 세계를 향한 일선창구 역할에 주력해야 하지 않을까. 파리 루브르, 오르세, 퐁피두 미술관이 각기 고대~19세기 중반, 19세기 후반~20세기 초, 20세기 이후 라는 뚜렷한 시대구분으로 각각의 기능에 충실한 3박자를 이루어내듯 이응노미술관은 시민들의 관심과 시 당국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새로운 문화공간, 자연친화형 미술관, 명품 갤러리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다.
수형생활이라는 기억조차 하기 싫은 삶의 굴곡속에서 불굴의 초인적 작가정신으로 인종과 감성을 넘어서는 보편의 예술세계를 펼친 고암 이응노 선생의 흩어진 작품들이 차곡차곡 모아져 명실상부한 전시, 연구, 교육, 문화마케팅 공간의 소임을 다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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