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충남상품 판로개척을 비롯 올 10월에 열릴 ‘백제제`때 ‘오사카 왔소!` 를 공연해줄 것을 일본 측에 제안했다. 일명 ‘四天王寺왓쇼이!`로 불리는 이 축제는 ‘조선통신사`의 당당했던 행렬을 기리는 축제로 유명하다. 이완구 지사는 줄곧 공주.부여가 격년제로 치러오던 ‘백제제`를 통합, 동북아(충남-일본-중국) 큰 잔치로 승화시키겠다며 팔을 걷고 나섰다.
‘백제문화제`가 그렇게 ‘고공행진`을 한다면 백제사(史)의 재정립이 불가피해지리라는 전망이다. 하지만 ‘잃어버린 왕국`이나 ‘백제문화`를 보려거든 ‘일본엘 가라`는 말에서처럼 그간 ‘백제권`개발은 ‘소걸음`을 면치 못했다. 그러니 충남을 축(軸)으로 일본과 중국을 함께 묶는 ‘한자문화권`의 〈삼국사〉를 다시 써야 할 시점이라 하겠다.
그 작업은 우리들 몫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지만 역사를 다시 쓰는 작업이란 ‘자화상`을 다시 그리는 일과 다를 게 없을 것이다. 그러니 논어(論語).맹자(孟子)책자를 품에 안고 일본으로 건너간 왕인박사, 나라(奈良)에다 법륭사(法隆寺)를 지은 백제의 조사공들, 백제 의자왕 아들, 정가왕 부자가 묻힌 ‘미야자키` 남향촌(백제마을)의 ‘시와즈마츠리(師走祭)`도 ‘백제제` 때 초하는 게 바람직하다.
‘정가왕` 부자 혼백은 지난 대전 EXPO 때 이미 부여를 찾아 선왕들께 문후를 올린 바 있고 공주와 자매를 맺은 ‘기쿠스이(菊水町)`, ‘후나야마(船山)` 고분축제(とんからりん)도 동참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 있다. 20세기 최대의 고고학적 개가(凱歌)라고 일본열도가 흥분했던 ‘아스카`의 ‘다카마츠총(高松塚)`과의 연관도 게재에 규명을 해야 한다.
그 벽화, 4신도(四神圖)를 놓고 일본 측은 백제풍이라 떠들어댔지만 우리 판단으론 고구려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았다. 일본에선 저 유명한 시바(司馬遼太郞)까지 ‘백제풍`이라 주장했으나 우리 측은 점잖게 ‘고구려풍`이라 고사한 것이다. 고구려 ‘쌍영총`벽화와 빼다 박은 듯 닮은 데가 있기 때문에 그러했다. 역사와 문물을 놓고 평가하는 데엔 그만한 양심, 안목쯤은 지녀야 존경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또, 한편으로 우리는 중국을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고구려와의 적대관계, 라당(羅唐) 간의 제휴, 그리고 의자왕 종말이 중국에서 이뤄졌기 때문이다. 계룡장학회(이사장, 이인구)에선 수년전 낙양(洛陽)을 찾아가 의자왕의 추모비를 세우려다 중국의 동북공정 야욕 때문에 좌초한 일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완구 지사의 대중국외교(자매)를 통해 그 길이 열렸으면 하는 바람을 갖는다. 옛날 개념으론 축제란 일종의 여기(余技)요, ‘심심파조`의 흥행쯤으로 치부해온 게 사실이다. 그래서 축제를 벌이는 군중을 향해 ‘호이징거`는 〈유희(遊戱)하는 동물〉이라 이기죽대며 그리고 유희(遊戱)란 농담과 진면목(眞面目) 사이를 시계추처럼 오락가락하는 인형에 비유한 일이 있다.
‘플라톤`은 한 수를 더해 〈경건한 마음으로 최대한 행사를 거행할 가치가 있는 것은 신(神)에 대한 것뿐이며 인간은 신의 완구(玩具)에 불과하다〉고 정의했다. 그러니 ‘백제문화제`는 여흥이나 추모, 회고취향의 놀이마당이 아니라 한 때 동북아를 호령했던 백제의 초상(肖像)이라 해서 지나칠 게 없다.
오늘에 와서 그것은 ‘국력`이요, ‘파워`인 동시에 돈방석이라 해도 나무랄 일이 아니다. 문화는 곧 경제로 이어진다 해서 ‘로마`, ‘파리`, ‘런던`, ‘그리스`, ‘스페인`, ‘중국` 등은 이미 오래전부터 고전(古典)과 문화를 팔아먹기 시작한지 오래다. 아니 토속(샤머니즘)까지 내세우는 세상이다. 오는 10월에 치러질 ‘백제문화제`는 동북아를 아우르는 그런 큰 잔치로 승화되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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