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오랫동안 시간을 쪼개고 나누어 보다 많은 일에 나를 관여시키는 것이 더 나은 삶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몇 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사람을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 본 적도 많습니다. 해가 중천인데 이부자리에 누워 있는 것을 죄악처럼 여기기도 했고, 휴일 날 약속이 취소되어 멍하니 집안에만 있을라치면 두통까지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하다못해 담배를 산다는 핑계로 집 앞 길을 서성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저런 모임들을 만들어서라도 했고 한 주간의 저녁 약속이 빽빽할수록 근사해했습니다. 말로는 피곤하니 어쩌니 하면서도 속으로는 그래도 내가 쓰임새가 많은 사람인 모양 이라며 은근히 기뻐했습니다. 그렇게 살아 온 시간이 아마도 족히 길지 않은 제 삶의 80%는 되는 듯합니다. 철이 들고부터는 거의 100% 라고 하는 것이 적당하다고 생각됩니다.
몇 년 전부터 게으름이나 느림, 멈춤에 관한 책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구절구절이 공감 가는 말들이 많더군요. 하지만 그러면서도 제 일상을 적극적으로 정리해 보고자 하는 생각은 못 했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지금도 버리지 못 하고 있는 그 탐욕이 이유입니다.
지난 연말을 지나 올해 초 쯤으로 생각됩니다. 가능한 빨리 은퇴할 수 있도록 경제적 안정을 구축하고 이 일은 놀이 삼아 하면 좋겠거니 하는 생각에 변화가 생기더군요. 제 일은 되는 대로 일찍 버려야 할 그런 일이 아니고 목숨이 다하는 그 순간까지 호구를 위한 방책이이야 한다는 생각으로 말입니다. 더구나 제 일이 그런 일로는 손색이 없다는 것에 생각이 미치자 감사란 단어가 자연스레 떠올랐습니다. 이미 이렇게 많이 가지고 있었는데...
그 덕에 일상들이 조금씩 정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잠깐 한 눈을 파는 사이 금방 일상은 복잡함입니다. 또 다시 일주일에 하루나 많으면 이틀 정도가 정시에 귀가하는 나날입니다. 몸은 몸대로 지치고 마음마저 한 조각 여유가 간절합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아마도 점점 팍팍해지는 우리네 삶의 모습은 그런 시간의 부족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무언가를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으면 내 마음은 저절로 근원을 찾아가는 여행길에 오름을 느낍니다. 아직은 목적지가 어디인지는 몰라도 그 여행길에서 만나는 풍경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그 아름다움에 빠져드는 나는 온 몸으로 기쁨을 느낍니다. 잠깐이라도 그렇게 기쁨을 느끼고 나서 눈을 뜨면 보이는 모든 것에 넉넉한 시선을 보낼 수 있게 됩니다. 남아 있는 것들에 조바심이 나기보다는 그것이 있음에 감사하게 됩니다.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탐욕으로부터도 자유로워질 수도 있을 것 같은 착각에도 빠집니다.
하지만 이런 순간은 소중합니다. 비록 순간이더라도 가벼운 차림으로 소풍을 가듯 삶을 대할 수 있게 되니 말입니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