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장작론이 있다. 박정희가 미래의 장작바리까지 미리 쓴 바람에 뒤의 대통령들이 밥 지을 땔감이 없어 애먹는다는 것이다. 경제에 쏠려 있지만,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시대정신이 우의적으로 담긴 비유다. 이 상충되는 듯한 두 가치는 미우나 고우나 우리 유산이며 따라서 둘이면서 하나다. 죽은 제갈공명과 산 사마중달에 박정희와 김대중을 대입시키면 일정한 상징성이 확보되는 이유도 이것이다.
사실 삼국지는 정치와 유사한 상징조작으로 태어났다. 영웅을 갈망하는 중국인과 촉한공정, 동북공정이다 해서 공정(工程)을 좋아하는 권력층 취향과의 합작이다. 천하삼분지계의 삼국정립도 방통, 노숙, 주유, 감녕 등 당대 지식사회 아이디어를 공명이 차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삼고초려는 공명이 먼저 유비를 필요로 했다는 ‘위략’ 설로 부정되고, 적벽대전은 팩트(사실)와 픽션(허구)이 섞인 팩션이라는 연구자들을 많이 봤다.
장군이 맞겨루는 장군전으로 대세를 가름하는 전투 방식도 당시 대규모 보병전 양상으로 보면 실로 영화 같은 얘기다. 공명과 중달의 싸움에도 그런 요소가 다분하다. 공명이 죽자 중달이 추격을 명하지만 아뿔싸, “공명이 살아 있었던가? 계략에 빠졌구나!” 학창의를 입고 깃털부채를 든 수레 위 인형에 속은 중달과 그 병사들이 갑옷과 창칼 내던지고 혼비백산한 얘기 하며….
이 역시 이설이 숱하게 따라다닌다. 공명이 죽자 추격하던 중달이 중도 퇴각하는 설정은 그만큼 중달이 행군에 신중했다는 증거이며 결국 공명 띄우기의 일단이라는 것. 어떠했든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달아나게 했다는 사공명주생중달(死孔明走生仲達)이 우리 정치판에서 회생하는 것처럼도 보인다.
거칠게 분류되는 대로, ‘죽은 박정희’ 진영에 박근혜는 물론 이명박 등등이 있고 ‘산 김대중’ 진영에는 범여권 후보들이 있다. 현 대통령도 넣을 수 있다. 김영삼도 죽은 박정희의 한 진영에 섰으나 전례에 비춰 역효과 아니면 다행이다. 죽은 대통령, 전직 대통령의 부각이 바람직하든 그렇지 않든 그분들 정치역정이 곧 현대정치사로 치환되는 까닭이다. 허물이 있어도 산업화와 민주화 세력은 나름대로의 정당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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