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신문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대표적인 반체제 작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을 찾아가 러시아 최고 권위의 국가공로상을 수여했다는 보도를 접했다.
와병중이라 시상식에는 참석하지 못하고 비디오로 수상소감을 밝힌 솔제니친에게 시상식 직후 자택을 찾아 치하하는 푸틴에게 휠체어에 앉은 솔제니친이 “당신이 찾아온 것을 높이 평가한다. 업무가 넘쳐 날 텐데 어떻게 여기까지 왔느냐” 하며 반겼다. 푸틴의 통치 스타일을 각색하기 위한 것이 되었든 되지 않았든 간에 그 행위 하나만 보더라도 글을 쓰는 작가로서의 위상 엿보이지 않는가. 우리 문화에 내재되어있는 부조리함에 대한 시사 해주는 바가 크다.
이렇듯 책은 그 나름대로 생명력을 가지고 작가에게는 삶을 소진하여 태우는 번제물로 독자에게는 삶의 이정표 역할을 나아가서는 나라의 살아있는 양심이 되기도 하고 반체제 작가 솔제니친처럼 국가의 운명 그 자체에 비견되기도 한다.
우리 사회는 글을 쓴다고 하면 무엇 하러 글을 쓰냐고 되묻는다. 그 말은 돈이 안 된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그 옛날 장애인에 대한 사회의 편견처럼. 장애인 작가들을 보자 그들은 경제활동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그들은 이해타산과는 상관없이 문화 예술 활동을 통하여 한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받고 혹은 장애인에 대한 극복을 통하여 열악한 사회적 편견을 깨서 사회적 인식개선을 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선진복지사회를 지향하는 우리나라에서는 장애인이 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지위를 갖는 방법적인 측면에서 노력이 부족하다. 거기에 비하면 일반작가도 마찬가지다. 장애의 정도에 따라 그 표현 방법이 다르겠지만 예를 들어 문학을 하는 사람은 출판을 통하여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전시를 통하여 음악을 하는 사람은 음악회를 통하여 그들의 정신을 표현하고 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일반인들과 경쟁을 하지 않겠는가. 그것은 국가의 몫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유도 하는 변변한 시스템하나가 제대로 없다. 그러면서도 복지사회란다.
경제적 여유가 없는 장애인 작가의 활동을 보장해주고 일반 작가의 활동도 활발하게 지원하며 독자와 함께하는 향수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지속적으로 계층별 단절이 아닌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향유하는 영혼이 아름다운 사회가 되었음 싶다.
유명작가 몇 사람의 권위로 움직여지는 문화 시장이 아닌 일반 소시민들이 다양한 표현과 접근성을 가지고 장애와 비 장애 그리고 일반 작가들이 활발한 활동과 집필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필요가 절실하다 특히 문화는 형평성을 운운해서는 안 된다.
문화라는 것은 소수의 작가들을 통해서 창작 되지만 향유하는 계층은 대다수란 것을 항상 염두에 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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